국내에서 처음으로 거리 전체를 쇼핑몰로 꾸민 경기 고양시 일산구 라페스타 거리의 밤 풍경. 놀이공원처럼 말끔하게 단장한 거리 끝에서는 야외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 청원건설
《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라페스타 거리. 이곳에 들어서면 딱딱한 아스팔트 대신 부드러운 고무와 점토 블록이 깔린 폭 28m, 길이 300m의 보행자 전용도로가 눈에 띈다. 무질서하게 주차된 자동차나 도로 턱도 없다. 길 양편에는 3∼5층의 현대식 쇼핑몰이 3동씩 늘어서 있다. 각 건물이 원형 구름다리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 구름다리 밑에는 조명시설을 갖춘 야외 공연무대도 설치했다. 거리를 걷다가 건물 밖에 설치된 투명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곧장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 거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인 셈이다. 》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 공룡’과 지역 상권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 기업형 유통망에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지역 상권이 풀어야 할 화두다. 8월 말 국내 최초로 거리 전체를 현대식 쇼핑몰로 단장한 라페스타 거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거리가 백화점이다=라페스타 거리는 서울 명동이나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처럼 자연 발생적인 상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형성된 상업지구.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 상가가 들어서지 않던 이곳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샌타모니카 거리 등을 모델로 현대식 쇼핑 공간으로 꾸민 것.
시설과 규모는 백화점에 비해 손색이 없다. 연면적 2만여평 규모의 매장에는 패션 잡화 가구 화장품 음식점 등 280여개 상점이 분양을 받고 영업 중이다. 지하 1층에는 주차장을 마련했다.
1층 상점 간판의 규격을 통일하고 2층 이상의 간판은 한곳에 정리했다. 잘 정비된 거리와 건물은 놀이공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 SBS TV 드라마 ‘완전한 사랑’과 ‘때려’ 등이 이곳에서 촬영 중이다.
▽문화가 숨쉬는 공존 모델=라페스타 거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 할인점인 까르푸 일산점이 들어서 있다. 한 블록을 지나면 롯데백화점 일산점, 1km 정도 밖에는 할인점인 뉴코아 킴스클럽 매장이 영업 중이다. 이처럼 코앞에 있는 백화점 할인점 등에 익숙한 고객을 거리로 유인하려면 시설만 바꿔서 될 일은 아니다.
케이블 음악 방송국인 KM TV와 8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 롯데시네마를 유치해 오락 기능을 강화했다. 인기가수가 출연하는 야외공연이 벌어지는 날에는 8000∼1만여명이 몰려든다.
시행사인 청원건설 최리사 이사는 “상권 현대화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 부산 강원도의 지방자치단체의 방문과 대학과 건설업체 등의 견학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절반의 성공=하루에 드나드는 인구는 평일 5000여명, 주말은 1만여명에 이른다. 시설과 공연 콘텐츠를 무기로 고객을 모아 백화점 할인점 등과 공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고양시청 도시계획과 황경호(黃耕鎬) 계장은 “상권이 다시 살아나는 ‘라페스타 효과’가 생기고 있다”며 “주변 상가의 임대료가 20∼30% 정도 오르고 오피스텔 공실률도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이 지갑을 열게 하려면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백화점 할인점과 차별화된 상권을 만들기 위해 120여개 패션 매장 중 50%를 아웃렛 매장으로 채웠지만 눈에 띄는 브랜드는 적은 편.
의류 아웃렛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나모씨(37)는 “매출이 목표액의 60% 수준에 올랐다”며 “백화점 할인점과 함께 상권을 키울 수 있는 데도 일부 의류업체들이 백화점 눈치를 보며 아웃렛 매장 허가를 내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살아남으려면 변하라=‘상권의 파이’를 키워가야 할 일부 상인들이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는 것도 걸림돌이다. 규격에 어긋난 간판을 설치하거나 몰래 상점 입구에 설치된 입간판을 다른 곳을 옮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내 가게 내 맘대로 하겠다”는 주장.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일부 상인의 반발로 대형 공연이 2주간 중단되기도 했다.
장안대 변명식(邊命植) 유통경영계열 교수는 “상권 슬럼화를 막기 위해서는 상인 스스로가 점포 투자를 늘리고 서비스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며 “일본처럼 상인 조합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세일을 하거나 상품권을 발행하는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