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왼쪽)과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양국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의 활기와 일본 영화의 독창성을 서로 배우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미옥기자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데 이어 10일 개봉된 일본 영화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48)과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의 박찬욱 감독(40)이 최근 서울에서 만나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독특한 작품세계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감독들. 구로사와 감독은 ‘큐어’ ‘인간합격’ ‘카리스마’ ‘거대한 환영’ 등으로 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됐다.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국내 최고 흥행작이었고 2001년 일본에서도 개봉돼 화제가 됐다.
▽구로사와 기요시=‘공동경비구역 JSA’는 일본에서 개봉됐을 때 관람했고 ‘복수는 나의 것’은 DVD로 봤다. 내가 놀란 것은 장면마다 감독의 힘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박 감독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의 힘과 노력이 실린 영화는 흔치 않다.
▽박찬욱=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에선 독창성이 느껴진다. 특히 클로즈업 같은 촬영기법 대신 와이드 앵글로 무표정한 주인공이 조용히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담아낸 것은 충격적이었다. ‘카리스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야쿠쇼 고지의 깡마른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피터 오툴과 비슷해 더 좋았다.
▽구로사와=아, ‘피터 오투루’. 일본에 돌아가면 야쿠쇼씨에게 그 얘길 꼭 전해줘야겠다.
▽박=가장 궁금한 점은 어떻게 각본까지 쓰면서 영화를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1년에 세 편도 찍는 것 같다.
▽구로사와=일본에서는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웃음). 일본에서는 영화를 만들 때 꼭 돈을 벌려고만 하진 않는다.
▽박=그럼 누가 돈을 투자하나.
▽구로사와=돈보다는 명작,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제작자들이 있다.
▽박=일본 팬들은 한국 영화가 다이내믹해 좋다고 한다. 한국 젊은 감독들은 일본의 정적이면서 느리고, 그런 가운데 느닷없이 감정의 분출이 있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구로사와=어느 나라나 똑같은 상황이다.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몰려다닌다. 난 할리우드식으로 찍어선 승부가 힘들다고 생각해 다른 방법으로 찍는다.
이어 두 감독은 준비 중인 신작 얘기들을 꺼냈다. 박 감독은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 보이’를, 구로사와 감독은 한국영화사 ‘미로비전’이 제작을 맡은 ‘로프트(Loft)’를 연출한다.
▽구로사와=‘로프트’는 비극적인 사랑에 약간의 공포도 담긴 러브스토리다.
▽박=난 항상 이전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요즘 ‘올드 보이’를 편집 중인데 내가 요즘 본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이 내 편집 작업에 영향을 줄까봐 신경 쓰인다. 그렇게 되면 영화는 망하는 거고(웃음).
▽구로사와=나도 각본 쓸 때는 여행을 하지만 촬영 때는 영향을 받기 싫어 아무 일도 안 한다.
▽박=한국 정부의 조치로 내년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완전 개방되는데 일본 영화의 독창성과 한국 영화의 활력이 결합되기를 바란다.
▽구로사와=좋은 것만 결합하면 좋겠다. 걱정도 있다. 그렇게 됐을 때 상업성이 부족한 내가 영화를 찍을 수 있겠느냐(웃음).
▽박=누가 나에게 ‘현대 사회 인간들의 삶이 어떤 거냐’고 물으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을 보라고 말하겠다.
▽구로사와=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복수는 나의 것’을 추천할 것이다. 박 감독이 만드는 ‘올드 보이’의 원작 만화는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일본 어디서나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정리=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