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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오!브라더스' 통해 본 한국영화 제작 현주소

입력 | 2003-10-14 18:21:00


《관심을 끈 추석 대목의 승자는 ‘오! 브라더스’였다. 9월5일 개봉된 이 작품은 12일 현재 전국 관객 수 310만명(서울 94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입장료 7000원 기준으로 대략 217억원의 극장 매출액이 발생한 것. 수준급의 영화 완성도와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흥행작 대열에 오른 이 작품의 ‘장부(帳簿)’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한국 영화 제작비의 현주소와 그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

○ 황금알 낳는 거위인가 속빈 강정인가

:제작비:극장 매출액이 고스란히 영화사 차지는 아니다. 입장료에서 문예진흥기금과 부가가치세(1000원 남짓), 극장 대관료격인 부금(賦金), 배급료 등을 빼야 한다. 결과적으로 7000원 중 제작, 투자사의 몫은 대략 2500∼2700원(36%)으로 보면 된다.

아직 정산이 끝나진 않았지만 이 영화의 예상 순제작비는 25억원. 마케팅 비용 17억원을 합쳐 총 제작비는 42억원에 이른다. 제작, 투자사인 ‘KM컬쳐’측은 이 같은 총제작비와 제반 비용을 빼면 약 30억원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오! 브라더스’의 흥행 성공과 달리 한국 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악화되고 있는 게 현실.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장편영화는 편당 평균 5억∼6억원씩 손해를 봤으며 평균 수익률은 -17%였다. 수익률 악화의 주요 원인은 출연료의 인상으로 껑충 뛴 제작비 때문이다. 2001년 편당 28억1900만원이던 총제작비는 지난해 33억원으로 상승했다. 한국 영화가 시장점유율 40% 이상의 전성기를 맞고 있으면서도 ‘외화내빈(外華內貧)’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년 관객 244만 명(서울기준)을 기록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한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이 영화에 순수제작비 27억5000만원, 마케팅비 10억원 등 총 37억5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지금 이 영화를 만들라고 하면 50억원으로도 자신 없다. 당시 주역급 4명의 개런티가 5억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13억∼15억원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주장하는 영화계의 ‘제작비 불감증’은 여전하다. 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총제작비 110억원)은 흥행 참패로 ‘재앙’으로까지 불렸고, ‘내츄럴 시티’(순제작비 80억원)도 최근 흥행에서 쓴잔을 마셨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태극기 휘날리며’(총제작비 130억원)와 ‘실미도’(총제작비 100억원)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 갈수록 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출연료:제작비 상승요인 중 하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출연료. ‘오! 브라더스’에서 주연을 맡은 이정재의 출연료는 개런티 ‘3억원+α’. α는 서울 관객 50만명이 넘으면 1인당 300원을 추가로 받는 ‘러닝 개런티’다. 예상 관객 수를 100만명으로 보면 1억5000만원의 추가 수입이 예상된다. 이정재 이범수 이문식 등 전체 출연자의 개런티는 8억1000만원으로 순수제작비(25억)의 32%를 넘어선다.

1월 개봉된 ‘이중간첩’에서 한석규가 받은 개런티는 ‘4억5000만원+α’. 유오성은 ‘별’에 캐스팅되면서 기본 개런티 5억원에다 흥행에 성공할 경우 추가 개런티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해 가볍게 최고 기록을 깼다. 지난해 ‘챔피언’에서 그가 받은 출연료가 2억1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1년도 안돼 몸값이 두 배 이상 올랐다.

러닝 개런티의 취지는 고정 개런티를 줄이는 대신 흥행에 성공했을 때 보상 받는다는 것. 제작사 ‘좋은 영화’의 김미희 대표는 “고액의 출연료에 러닝 개런티까지 챙기는 비정상적인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주연배우의 개런티를 전체 제작비의 15% 안팎으로 보고 있다. 제작비란 파이의 크기는 일정하다. 주연배우가 많이 가져가면 조연이나 스태프의 몫은 그만큼 줄 수밖에 없고 영화 완성도가 낮아질 우려도 있다. 9월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공공의 적’ ‘파이란’ 등 지난해 개봉된 영화 8편에서 촬영 스태프들의 평균 개런티는 600여만 원(2001년 기준 최저생계비 1147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 쓰면 쓸수록 돈 번다?

:마케팅:‘오! 브라더스’의 촬영 전 가제는 ‘빌리브(Believe)’. 하지만 영화 촬영에 앞서 일반인 대상의 조사를 실시해 제목이 바뀌었고 이 내용은 시나리오와 마케팅전략 수립에 반영됐다. 배우 호감도 조사와 ‘레인 맨’ ‘제 8요일’ 등 유사 작품에 대한 조사도 거쳤다.

KM컬쳐 심영 이사는 “영화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면 최고의 마케팅은 영화 그 자체”라면서 “‘오! 브라더스’의 경우 광고보다 ‘입소문’, 즉 시사회에 집중하기로 전략을 바꿨다”고 밝혔다. 한국 영화의 경우 개봉에 앞서 보통 1만 명 내외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개최하지만 이 작품의 시사회 관객 수는 1만7000명 선이었다.

개봉 첫 주 200여개 안팎의 스크린을 확보해 승부를 거는 할리우드식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 전략을 한국 영화가 추종함에 따라 마케팅비는 2, 3년 전에 비해 30∼40%가량 상승했다. 집중적인 홍보로 초반에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재명 대표는 “시장 규모에 맞게 제작비를 현실화하고 철저한 제작 관리로 알게 모르게 새는 돈을 줄이지 않으면 영화계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