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제의로 사회 전반에서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각 이익단체들이 재신임 투표를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움직임이어서 사회적 혼란과 대립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마침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 문제를 놓고 보혁(保革)대결이 첨예화하는 상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협상, 공무원노조 관련법 제정, 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사패산 터널 건설 등 메가톤급 사안을 둘러싼 대형집회가 이미 예정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재신임 국민투표와 이들 현안이 맞물려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각종 집회와 불법 집단행동이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줄 이은 대형집회=경찰은 노 대통령이 제안한 재신임 국민투표일인 12월 15일까지 60여일 동안 대형집회 16건을 포함해 모두 33건의 주요 집회가 이미 예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집회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 1만명 이상의 초대형 집회만 해도 10여건에 이른다. 이달 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국교사결의대회’, 25일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의 국민대회, 10월 말 사패산 터널 건설에 반대하는 조계종 환경수호 대책위의 ‘범불교도 대회’, 11월 9일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 11월 19일 전국농민연대의 ‘전국농민대회’, 12월 초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련) 등의 ‘2차 농민대회’ 등이 대표적 집회.
또 방폐장 설치에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태도가 여전히 강경한 데다 11월 중하순부터는 민노총의 총파업, 전국민중연대의 전국 동시다발 집회 등 많은 집회가 계획돼 있다.
▽‘재신임 연계’ 으름장=이들 단체 중 상당수는 이미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재신임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이들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전교조는 “교육개방 불허,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철회 등 현안에 대한 현 정권의 명확한 정책 결정이 없으면 재신임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19일 발표할 계획이다.
전국민중연대 정대연 정책위원장은 14일 “뚜렷한 정책 변화 없이 재신임을 묻는 것은 면죄부를 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집중투쟁기간을 갖고 WTO 개방 반대 등 3대 사항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농련 손재범 정책실장도 이날 “전국농민대회에서 현 정부의 농정을 평가한 뒤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재신임 여부와 자연스럽게 연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노총측 역시 “뚜렷한 개혁성향이 없으면 노동계는 불신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으며, 부안의 핵반대 군민대책위도 “방폐장 건설에 대한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으면 불신임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부의 대응=노동부 검찰 경찰 등 15개 정부기관 실무자 23명은 14일 ‘공안관련 실무자대책회의’를 열고 연말까지 이어지는 각종 시위와 집회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키로 방침을 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투표 실시를 전제로 이들 단체가 집회 등을 통해 재신임, 또는 불신임을 위한 ‘운동’을 할 경우에 대비, 관련 법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김용희 지도과장은 “사전선거운동의 규정 등을 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