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서 방을 구하려면 복덕방에 찾아가기보다 신문의 부고(訃告)를 읽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누가 죽어야 방이 생기니까.”
토드 부크홀츠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에서 집 구하기 힘든 뉴욕 사정을 상징적으로 서술한 말이다.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1970, 80년대에 앞 다퉈 임대료 통제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엉뚱한 결과가 나타났다. 기존 세입자들은 여간해선 방을 비우지 않았고 집주인들은 임대주택을 줄였다. 이 때문에 극심한 공급 부족이 빚어진 것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세상인을 보호한다고 만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임대료 폭등사태를 부른 것이 작년 일이다. 보유세를 3배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정부 정책도 서울 강남의 ‘불패 신화’는 깨지 못하면서 많은 국민에게 고통만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 보유세는 시 군 구 등 기초 자치단체가 거둬 쓰는 ‘동네세’다. 보유세 수입이 늘어나면 서울 강남구는 더욱 풍족해진 재원을 들여 더 살기 좋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구는 돈이 많은 동네다. 올해 재산세 수입은 서울 금천구의 9배, 종토세 수입은 도봉구의 13배다. 작년에 비해 올해 늘어난 종토세 규모만도 도봉구의 올해 종토세 총액과 맞먹는다. 정부의 방침대로 보유세를 강북은 소폭, 강남은 몇 배로 올리면 행정서비스의 질과 생활환경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이럴 경우 핑계만 있으면 오르는 강남 집값이 가만히 있겠는가.
정부는 보유세 인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흔히 재산세가 한국의 수십 배에 이르는 미국의 예를 든다. 정부 논리가 맞다면 미국의 집값은 오르지 않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전국부동산업자협회에 따르면 120개 조사지역 가운데 5개 지역의 4∼6월 평균 주택가격이 1년 전보다 20% 이상 올랐다. 강남 못지않은 수준이다. 미국 북동부 지역은 전체적으로 13.6%의 상승률을 보였다. 재산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보유세 인상의 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국민의 몫인 고통이 커질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보유세는 ‘장바구니 세금’이라고 한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집값이 떨어졌건, 명예퇴직을 당했건 예외 없이 일년에 한번씩 세금고지서가 날아든다. 투기꾼과 실수요자의 구분도 없다. 집을 2채 이상 갖고 있고, 집을 팔아 차익을 남겼을 때만 내는 양도세와는 다르다. 집주인이 세금을 임대료에 떠넘길 때는 세입자가 고통을 받는다.
과세표준 현실화를 포함한 보유세제의 개편은 필요하다. 하지만 보유세를 올릴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지자체간 재정 격차를 해소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국민에게 지나친 부담을 한꺼번에 줘서도 안 된다. 국민의 주머닛돈을 정부가 언제든 꺼내갈 수 있는 쌈짓돈쯤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단기간에 세금을 몇 배로 올리겠다는 발상이 나오기 어렵다. 이런 세금정책은 내놓을 때마다 거센 조세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세금 부담은 가랑비에 옷 젖듯 늘려야 한다. 이는 납세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동시에 세금을 거두는 기본 요령이다.
천광암 논설위원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