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李霆·1554∼1626)의 ‘문월(問月·달에게 묻는다)’. 한국 회화사상 최고의 묵죽화가로 꼽히는 이정의 그림은 조선 중기 묵죽화의 태동이자 완성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간송미술관
조선왕조는 중국의 주자 성리학을 이념기반으로 삼은 전기와, 성리학을 우리 것으로 체화한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후기의 문화가 확연히 구별된다. 미술 역시 중국풍이 짙었던 전기와 조선의 고유색과 화풍이 꽃 핀 후기의 진경시대(眞景時代·1675∼1800)로 나뉜다.
그렇다면, 전기와 후기를 잇는 과도기적 그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26일까지 조선 중기 회화들만 간추려 선보이는 ‘조선 중기 회화 특별전’을 연다. 한 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모색이 담긴 전시회다. 전기의 중국풍이 남아 있으면서도 양식파괴와 새로운 고유색 표출을 시도하는 등 후기 진경시대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실험들이 곳곳에 보인다.
중종(재위 기간 1506∼1544)에서 현종(재위 기간 1660∼1674)에 이르는 조선 중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침과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 끊임없이 내란이 이어진 혼란기였다. 왕조의 세도 주체도 공신(功臣)에서 사림(士林)으로 옮아가는 시기였다.
간송미술관측은 1623년 인조반정을 조선 전기와 후기의 분기점으로 삼았다. 인조반정은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율곡 이이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성공시킨 혁명으로 이 사건 이후부터 문화 전반에 조선 고유색이 퍼져 나가 진경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조선 중기 문화는 전기 문화의 노쇠화 현상과 후기 문화의 미숙성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노인과 유아를 함께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며 “포도 대나무 난 등 문인화의 소재들을 먹으로 대담하게 사생해 고유색을 가장 먼저 발현해 낸 사대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회에는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에서부터 김시(金(제,지)), 이항복(李恒福), 김식(金埴), 신익성(申翊聖), 조속(趙涑), 윤두서(尹斗緖)까지 이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120여점이 나온다. 02-762-0442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