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씨가 14일 전국체전 레슬링 남고부 예선 경기에서 휘슬을 불며 판정을 내리고 있다. 전주=안철민기자
“레슬링 경기가 벌어지는 노란 매트만 보면 가슴이 뛰고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합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100여명의 레슬링 심판 가운데 ‘홍일점’ 김은영씨(29). 14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84회 전국체전 남고부 예선 주심을 맡은 김씨의 표정은 진지했고 판정은 거침없었다.
김씨는 대구가톨릭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친 재원. 현재 울산의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레슬링에 매료된 때는 대학 신입생이었던 93년. 영남대 축제에 놀러갔다 순수하고 인간적인 레슬링부 선수들에게 흠뻑 빠졌다. 그 후 10년 동안 레슬링 경기를 보러 전국을 다녔고 경기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레슬링 공부’를 했다.
“레슬링은 몸과 몸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경기입니다. 크게 이기고 있다가도 잠시 방심하면 순식간에 뒤집어집니다. 인생과 비슷하지요.”
취미로만 레슬링을 즐기던 김씨가 본격적인 심판 교육을 받은 것은 올해 1월. 필기와 실기 테스트를 거쳐 정식으로 심판자격증을 딴 김씨는 3월 강원 태백시에서 열린 회장배 대회에서 실전에 데뷔했다. 이번 체전이 7번째 대회.
웅장하면서도 불협화음이 격렬한 독일 작곡가 막스 레거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김씨는 레슬링으로 자신의 ‘여성 안에 숨어 있는 남성호르몬’을 재발견했다며 즐거워했다. 김씨는 1m62, 54kg의 평범한 체구. 그러나 남자 후배 선수들이 가끔 “누나는 힘이 좋으니까 직접 레슬링을 해보라”고 권유한다고.
아직 미혼인 김씨는 결혼 계획을 묻자 “얼굴은 못생겨도 마음 넓은 남자가 좋다”며 “레슬링 선수도 좋지만 완고한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걱정”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앞으로 국제심판 자격시험에 통과해 아시아경기와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전주=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