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의료계가 처한 상황은 농업 분야와 너무도 닮은꼴이다. 세계는 개방화의 큰 물결로 흘러가고 있지만 국내 의료 분야는 여러 가지 제약들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우리나라 샴쌍둥이가 수술을 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싱가포르는 의료 선진국으로, 한국은 의료 후진국으로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 왔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의료 허브’를 목표로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해 정부는 공공의료에 집중하고 민간 의료는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민간에서는 일반인의 투자로 주식회사형 병원을 설립하고, 첨단의료시설과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개발해 경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소비자인 국민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삶의 질이 높아졌으며, 수많은 외국 환자를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의료 현실은 어떤가. 국제경쟁력을 갖추기는커녕 각종 규제로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우리는 지난 30여년간 ‘의료는 곧 복지’라는 관점에서 건강보험 재정 문제에만 매달렸다. 당연히 의료의 산업화나 국제경쟁력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 의료는 국민이나 의료인, 정부 누구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의료를 ‘복지’뿐 아니라 산업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의료는 이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크게 뒤져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의료의 산업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영리법인 제도를 도입해 외국 병원과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자국민에게도 병원에 대한 투자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들어서는 병원을 산업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이 독점했던 의료와 보육, 교육 등의 분야에 민간기업을 자유롭게 진입시킴으로써 국내총생산(GDP)이 0.92% 올라가는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도 한시바삐 주식회사형 병원제도, 민간보험, 병의원의 자유로운 마케팅 활동 보장 등 의료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우수한 의료 인력들이 각종 규제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료산업화를 통해 우리 병원이 국제경쟁력을 갖춘다면 매년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해외 유출 환자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을 것이요, 나아가 한국 병원 브랜드의 해외 진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선 공공의료 확충, 후 의료산업화’를 기본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방침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굳이 순차를 정할 필요가 있는가. 싱가포르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의료 보장은 정부가 맡고, 이와 병행해 의료산업화는 민간병원이 맡아서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마무리되는 3년 내에 병원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산업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의료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의료는 기로에 서 있다.
박인출 보건산업벤처협회장·예치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