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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문홍/사람 잡는 학교체육

입력 | 2003-10-16 18:27:00


스포츠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말 그대로 다양한 스포츠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는 분야다. 이에 따르면 불세출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지위를 떨어뜨린 달갑잖은 존재가 된다. 흑인 청소년들에게 신분 상승의 상징과 같은 존재인 조던이 왜? 흑인 아이들이 저마다 조던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는 바람에 길거리 농구에 매달리게 됐고, 정작 변호사나 의사 등 상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공부는 등한시하게 됐다는 논리다. 이렇게 보면 독재사회에서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하나로 활용됐던 스포츠가 이제는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고교생 농구선수가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3500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대학 농구선수가 프로농구에 진출할 확률도 이와 비슷하다. 조던과 같은 스포츠 스타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도 미국은 우리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우리의 학교체육은 대학 입학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운동특기자라도 학업에 예외를 두지 않으니까. 미국 대학의 운동선수들은 학과목에서 평균 B학점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당연히 운동선수로서 ‘수명’이 다한 뒤에도 사회에 나와 다른 일을 할 경쟁력이 있다.

▷우리의 경우 사정은 정반대다. 현재 초중고교에서 운동선수로 뛰는 학생은 대략 12만명. 이들의 사전에 학교는 운동을 하는 곳일 뿐 ‘수업’이라는 단어는 없다. 고생 끝에 대학에 들어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토록 하기 위해 대학 당국이 학점과 출석에 깐깐한 교수와의 시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할 정도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나오면 뭐하나. 운동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사회에 나와 할 일을 찾기란 스포츠 스타로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힘들 게 뻔하다.

▷이렇게 왜곡되고 후진적인 학교체육 시스템 때문에 이제는 학생이 죽기까지 한다. 고교 레슬링 선수가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하다가 숨졌다. 3월 충남 천안시의 모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사고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문화관광부는 학교체육 업무를 서로 떠넘기기에 바쁘다. 개혁이 별건가. 우리 아이들을 잡는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고치는 게 개혁이지. 중앙대 안민석 교수는 “학생을 운동의 노예로 만들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학습능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첫 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