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노모를 모시고 70대 남편과 사는 60대 여인. 어머니와 얘기가 안 통해 답답하기만 한데, 자식들이 손자라도 데려오는 날이면 오히려 대화에서 밀려나는 기분이다. 이게 잠시 서운해 하다 잊어버릴 일인가.
“노인들은 젊은이 말 잘 들어주고, 자기 말은 아껴야죠. 젊은이도 노인에게 이것저것 타이르려는 생각은 버렸으면 합니다. 급격히 바뀌는 세상,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나가면 노소가 어울리며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라디오 상담코너 ‘고 여사의 실버상담실’을 진행하는 고광애씨(66). 그가 노년의 당당하고 알찬 인생을 위한 조언을 책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바다출판사)에 담았다.
결혼 전 50년대에 일간지 기자생활을 했던 그가 노인문제를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막내딸을 마지막으로 세 자녀가 모두 분가해 나간 뒤. 생각이 다른 세대 사이에 이해를 넓혀가는 방법을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엮어 친구들과 돌려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들이 우연히 글을 보고 “재미있네, 출판하시지 그래요”라고 권했다. 2000년 첫 책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를 냈고, 그의 ‘노년 아름답게 엮어내기’ 노하우는 라디오 상담코너 진행으로 이어졌다.
이번 책은 그가 ‘조금은 교과서 같았다’고 자평하는 첫 책보다 풍부한 사례를 엮어 꾸몄다. “종종 노인들의 항의를 받는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의 조언은 때로 노인들이 불편해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나친 모정은 자식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며느리를 손님으로 생각하고 대하라, 내 힘으로 사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노인들은 말이 많아질 뿐 아니라 남의 얘기를 안 들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모두 떠안고 가겠다는 생각은 곤란해요.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물려주고 취미 생활에 즐겁게 몰두하는 것이 보기 좋은 모습이죠.”
그는 언젠가는 노년에 접어들 청년과 중년 세대를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흥미를 유지할 관심사를 많이 개발해 두라”고 조언했다.
둘째아들은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을 만든 임상수 감독. 영화 팬이기도 한 고씨는 “아들의 영화는 관심사가 달라 즐겨 보지 않는다”며 웃음 지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