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오인환 지음/550쪽 1만8000원 열린책들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도모하다가 실패한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교훈으로 삼지 못했고 전두환 정권은 전임자보다 더 철저한 철권정치에 의존했다. 노태우 정권 역시 전임자의 과오에서 배우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김영삼 정권은 잦은 개각이 정권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전임 정권에서 배웠지만 취임 10개월 만에 그 교훈을 잊고 개각을 다시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은 대통령이 주변 인사들의 관리에 실패하면 급격히 권력 누수가 온다는 것을 바로 전 정권에서 목격했지만 그 전철을 밟고 말았다.
저자는 “전임자나 전임 정권을 일단 부정하고 보는 한국 정치의 특성 때문에 위기관리체계가 제대로 계승되고 작동할 수 없었던 점은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의 불운”이라며 수많은 위기를 헤쳐 온 조선왕조의 정치가들로부터 위기관리의 리더십을 배울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의 저자는 김영삼 정권에서 5년간 최장수 장관의 기록을 세우며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했던 전 공보처 장관.
저자에 따르면 요동정벌을 위해 떠났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것은 전투에 승리하더라도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모품이 돼 버릴 수 있었던 위기를 잘 관리해 낸 성공작이었고, 연이은 쿠데타를 겪으며 권좌에 오른 태종이 정적들을 철저히 제거하면서 왕권을 강화한 것은 위기관리의 체계화였다. 태종이 다진 기틀을 바탕으로 왕위에 오른 세종은 눈부신 업적을 이뤘지만 잦은 병치레 속에 위기관리에도 허술했던 데다가 안이하게 병약한 장남을 후계자로 선택함으로써 왕권의 혼란을 불러왔다. 태조부터 영·정조까지, 저자는 조선시대의 정치사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