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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향기][도쿄에서]대표적 論客통해 보는 일본의 왜곡된 내셔널리즘

입력 | 2003-10-17 17:20:00


◇도쿠토미 소호-일본 내셔널리즘의 궤적(德富蘇峰-日本ナショナリズムの軌跡)/요네하라 겐(米原 謙) 지음 주고(中公)신서

이 책은 메이지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활약했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일생을 근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흐름과 관련지어 논의한 것이다. 스물세 살에 평론 ‘일본의 장래’(1886)로 화려하게 논단에 데뷔한 소호는 71년간의 집필 활동을 통해 ‘근세일본국민사’ 100권 등 2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잡지 ‘국민의 벗’, 신문 ‘국민신문’ 등을 통해 언론 활동을 하고 정부에 참여하며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문학보고회 회장에 취임해 체제 이데올로기 메이커로서 전쟁을 찬미했다. 패전 후에는 A급 전범 용의를 받고 자택구금이 됐으나 구금이 해제되자마자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소호는 언제 어디서고 ‘국익’의 대변자였다.

소호는 처음에는 ‘평민주의’를 내세워 메이지 정부에 어느 정도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으면서 공공연하게 ‘제국주의’를 내걸고 ‘일본의 팽창’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평민주의’에서 ‘제국주의’에로의 소호의 이행을 종래에는 일종의 ‘전향’으로 해석해 왔으나, 저자 요네하라는 이런 관점을 완강히 부정한다. 즉 소호의 가장 큰 목적은 일본을 서구화하는 동시에 구미 열강들에 일본 고유의 입장을 이해시켜 일본을 인정받는 것이었는데, 그 목적이 좌절되자 일본을 ‘아시아의 맹주’로 상정하고 구미와의 관계도 대결로 노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탈아(脫亞)’와, 뒤에 등장하는 ‘흥아(興亞)’와는 매우 밀접한 내적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하게 ‘전향’이라고는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일본의 대미(對美) 감정을 악화시킨 원인 중의 하나로, 1924년에 미국에서 제정된 ‘배일(排日)이민법’이 자주 거론된다. 이 이민법은 일본으로부터의 이민을 전면 금지한 것이었다. 소호는 이 법이 ‘유색인종’에 대한 ‘백색인종’의 횡포라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일본인 이외의 아시아 사람들은 이 이민법이 성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입국이 금지돼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서 이 이민법이 문제시된 이유는 일본이 ‘유색인종 중의 선진’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호는 마치 일본이 ‘유색인종’을 대표해 ‘백색인종’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는 듯한 논조로 담론을 이끌어 가고 있다.

소호의 사상에는 구미와 아시아 사이에서 분열돼 찢겨진 근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왜곡된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저자는 “(소호는) 구미가 일본의 국민적 자존심을 상처 입히는 데는 민감하면서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에는 무관심했다… 아시아의 타자(他者)에게는 구미와 같은 입장에서 탈아의 자세 그대로 대처했던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구도는 지금도 결코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최근 일본에서는 ‘애국심’ ‘나라의 긍지’ 따위를 칭송하는 담론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 같은 담론에 소호의 망령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