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건축’이다. 아무리 하천 만들고, 공원 만들고, 길 가꾸고, 나무 심고, 광장 만들고, 분수 만들고, 유적을 복원해도 종국적으로 건축물들이 따라가 주지 않으면 서울 사대문 안의 역사성과 문화성은 점점 훼손될 것이다. 건축개발이란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사업성과 개발이익 극대화라는 구조적인 속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인사동서 배우는 피맛골 대책▼
알다시피 사대문 안은 전체가 상업지역이다. 재개발지구도 상당수다. 피맛골의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청진동지구, 북악과 인왕을 가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뒤 도렴지구, 피맛골은 물론 인사동의 성격마저 바꿔버릴 수 있는 공평지구, 북한산과 남산의 전망을 독점할 우려가 높은 세운상가 양편의 재개발지구 등. 앞으로 청계천 연변까지 민간중심의 개발을 독려한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고 보면 ‘사대문 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여러 모로 우려된다.
요즘 민간개발의 특색이라면 ‘대형·고층·분양·복합’개발이다. 여러 필지를 합쳐 땅을 키우고, 최대한 높이 짓고, 분양사업성 높이기가 지상과제고, 여러 용도를 섞으면서 분양이 가장 잘되는 주상복합 주거를 많이 넣으려 든다.
분양사업은 속된 말로 ‘짓고 빠지는’ 성향이 짙다. 개발회사는 좋은 건물을 짓는 것보다 분양이 잘되는 걸 최고로 여긴다. 천문학적 투자가 동원되니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굿모닝시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개발이익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익을 절제하고 공익을 살릴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사익과 공익의 조정 접점에 서울시의 역할이 있다.
이 점에서 인사동 ‘열두가게’ 이야기는 배울 점이 많다. 1999년 전통식당으로 쓰이던 450평의 꽤 넓은 땅이 한 기업에 팔렸다. 이 땅에서 인사동길의 정취를 잘 담고 있는 나지막한 건물에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공예점을 하던 열두 가게는 쫓겨날지도 모를 계제였다. ‘열두가게’ 주인들은 시민단체와 힘을 합쳐 영업권 보장을 요구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도 중재에 나섰다. 그 기업은 현명하게도 새로운 개발에 아예 ‘열두가게 브랜드’를 넣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서울시는 인사동의 재건축 열기가 지나치다는 판단 하에 2년 동안 재건축을 금지하고 시정개발연구원과 학계와 주민들과 함께 보전적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 계획을 만들었다. ‘열두가게’ 땅에 대해선 올망졸망한 가게의 형태를 살리도록 하는 지침을 세웠다. 그 기업이 새로 만든 건축설계안을 보면 인사동길 변에는 나지막한 건물을 두고 뒤편에 중층 건물을 들였다. 최근 착공한 이 건물은 건축주와 가게주인들, 인사동길을 아끼는 시민들, 인사동을 현대적으로 보전하겠다는 서울시가 합작해 풀어낸 행복한 사례다.
서울시는 이런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청진동 피맛골 재건축에서도 왜 이런 노력이 일어나지 못할까. ‘인사동 열두가게’가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청진동 해장국’도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최근 서울시의 건축심의를 받은 청진동 재건축안은 피맛길의 형태를 살리는 최소한의 제스처는 썼지만 피맛골 삶의 문화를 살리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설계다.
▼市, 문화보전적 건축 유도를▼
‘건축 조정을 통한 문화 보전’에 눈을 뜨자. 외국의 경우도 상업건축물이 늘어날수록 품격 낮은 건물이 늘고 기존의 문화가 깨지기 때문에 건축설계 조정에 고삐를 죈다. 예컨대 호주 시드니에서는 문화보전 지침을 세움은 물론 상업건축에 공공적 설계경기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시도 발상의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청계천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다. 청계천 연변에 분양성만 따지는 저급한 건축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설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청계천 공사 기간 중에 개발허가를 잠시 중단하고 차제에 사대문 안에 문화보전적 건축을 유도할 지침을 세우고, 20여년 전 피맛길은 물론 사대문 안의 역사 흔적을 뭉개버리는 마인드로 세웠던 재개발지구 계획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사대문 안’만큼은 문화보전적 건축으로 섬세하게 가꾸자.
김진애 건축가·서울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