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또다시 아내 쪽을 돌아보았다. 목이 힘들어 보일 정도로 뒤틀려 있는데, 사명당의 비각에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두 아들은 옆에 있는 보통학교 마당에서 자치기를 하고 있고, 아내는 빈손을 엇갈아 자기 두 팔을 꽉 잡고 있었다.
“당신, 괜찮나?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아내는 남편의 모습이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밋밋하고 색깔마저 잃어 가는 듯한 느낌에 겁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제일 끄트머리였는데, 어느 틈엔가 겹겹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비가 오는 건 아니제?”
“무슨 소리고…지난 며칠 동안 구름 한 점 끼지 않았다.”
“일주일, 아니제, 더 오래 됐다, 비 안 온 지.”
“그럼 누가 물을….”
“뭐라꼬, 누가?”
“아이고, 무섭다, 무슨 일이 있을라꼬….”
“총독부 명령으로 경찰이 이 비를 묻으려고 했다 아이가? 공사 당일 날씨는 쾌청했는데, 왜놈이 이 비에 손을 대는 순간, 번개가 번쩍번쩍 치면서 우르릉 우르릉 쾅! 하고 천둥이 치고.”
“일주일도 채 못 돼서 진두지휘하던 경찰서장이 변사를 했다 말이다.”
“맞다, 밀양강에 떠올랐다는 그 얘기 말이제?”
“아니다, 벼락 맞아서 시커멓게 타 죽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소리고? 목매달았다.”
남자는 어느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 사명당 비에 새겨진 한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蠻警卒起誓淸분塵부兵選徒師律一新楡岾救衆化被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