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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김병익/'비판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 2003-10-19 18:03:00


환경 문제가 왕성하게 제기되던 1980년,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상대방이 고르는 어떤 물질이든 앞으로 그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1만달러를 걸겠다고 공개적인 제안을 했다. 삶의 물질적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해 온 그는 머잖아 석유 식량 광물 등의 자원이 고갈돼 구하기도 어렵고 그 값도 비싸지리라는 ‘성장의 한계’류의 비관주의자에게 내기를 건 것이다.

▼에를리히-맬서스의 빗나간 경고 ▼

스탠퍼드대의 환경론자 에를리히 등 몇 명이 ‘쉽게 돈 벌 기회’라며 이 제의에 도전했다. 그들은 크롬 구리 니켈 주석 텅스텐 등 5가지 광물을 선택했고, 10년 후 그 물질들의 실질가격이 하락했는지 상승했는지에 따라 승패를 결정하기로 했다.

1990년 비관론자들은 자신들이 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크롬 값은 5% 내렸고 주석 값은 무려 75%나 하락한 것이다. 덴마크의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의 논쟁적인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홍욱희 김승욱 옮김)의 한 대목이다.

열성적인 환경주의자로서 월드워치연구소를 주재해 온 레스터 브라운의 ‘에코 이코노미’(한국생태경제연구회 옮김)와, 그의 예측과 주장이 왜곡과 과장으로 잘못돼 있다고 공박하는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잇달아 읽는 일에는 이 방면에 문외한인 내 경우 일종의 긴장감이 끼어든다. 마치 고수들의 바둑을 보는 것처럼 먼저 읽은 것을 공격하는 뒤의 분석과 논리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브라운의 저서는 내게 심각한 환경 생태 문제를 깨우쳐주고 지구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에 현기증까지 일으켜주었지만, 뒤에 본 롬보르의 두꺼운 책은 사태를 그리 비관할 필요도 없거니와 환경주의 때문에 투자의 낭비가 자행된다는 지적으로 우리를 안심하게도 한다.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간행된 후 이에 대한 많은 반론이 제기됐다는 역자의 해설로 미루어 이 책에 대한 반박을 보게 되면 순진한 나는 또 거기에 동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워진 나는 누구 말이 맞는지는 판단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래의 세계는 브라운이 우려하는 비관적 전망과 롬보르가 예상하는 낙관적 전망 사이 어딘가의 지점에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새만금 사업은 환경론자들의 우려처럼 심각한 부정적 양상만 생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발론자들의 기대처럼 유리한 결과만 낳는 것도 아닐 것이며, 위도의 핵폐기장 설치가 관계자들의 장담처럼 떳떳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의 공격처럼 위험한 것도 아닐 것이라는 어설픈 생각이 그렇다.

대체로 장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은 충격적인 공감을 일으키지만 그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 유명한 역사적인 예가 맬서스의 인구론이고, 70∼80년대에 활발했던 갖가지 미래 예측도 그랬다. 인구폭발이며 식량부족 자원고갈 대기오염 등 지구적 자산의 앞날이 모두 암담할 것으로 경고됐지만, 그때의 예상만큼 인구는 늘지 않았고 물자는 풍부해졌으며 생활조건은 오히려 개선됐다. 브라운을 공격하는 롬보르의 주장은 이런 현실적 자료들에 의거한 것으로 그의 통계분석들은 브라운의 비관주의 논거가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게 처리되었음을 강조한다.

▼경고-비판 있어야 미래대비 가능 ▼

그러나 나는 비관론자들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가 통계처리 방법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측할 당시의 수준으로 미래를 계산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 사이에 개입될 갖가지 의도되거나 의외로 이뤄질 요소들을 산입할 수 없는 데서 적중률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 갖가지 요소들이란 기술 발전과 대체 소재의 개발, 그리고 정책과 국민 모두의 의식과 생활 방식의 변화다. 이런 개발과 변화는 과학의 발전과 시장경제의 경쟁 때문에 이뤄지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경각심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비관론은 이런 변화들을 강요하고 촉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이 없다면 미래를 방치하고 그 불행에 대처할 준비를 미룰 것이다.

비관주의의 경고 때문에 대체 물질을 개발하고 산아제한을 하는 등의 대책이 나오고 그것들이 실행된 효과로 현실이 개선됐다. 사이먼은 내기에 이겼지만 그의 승리는 적수인 에를리히의 경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관론과 낙관론의 이 미묘한 경쟁은 비관주의적 비판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