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
때로 침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말을 너무 많이 해 실수를 자주 하는 것보다 말을 아낌으로써 효과를 더 많이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 순간에 말이 없으면 긴장이 흐른다. 그런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농축된 말 한마디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최근 들어 ‘카피를 줄이고 할 말만 간략하게’ 하는 ‘말 아낌 광고’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화려한 화면이나 유명연예인을 내세우는 대신 평범한 모델과 잔잔한 화면을 내보내다 광고가 끝날 즈음에 메시지만 전달한다.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한층 끌어올린 뒤 ‘아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농축된 카피 한마디를 쏟아내는 것.
던킨도너츠 광고(제일기획 제작)는 시작한 뒤 몇 초 동안 아무 소리도 없다. 아침에 덜렁 도넛만 갖고 출근한 남자. 도넛과 커피를 같이 먹고 있는 동료들은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 눈치를 주듯 자신이 들고 있는 커피로 눈길을 돌린다. 그제야 그 남자는 커피를 들고 있어야 할 자신의 비어있는 손을 민망한 듯 흔든다. 그러고 나서 ‘커피&도넛’이라는 자막만 나오고 광고는 끝난다. ‘던킨 도너츠엔 던킨 커피가 있어야 한다’는 간결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다.
SK텔레텍의 스카이 광고(TBWA 제작)도 말을 최대한 자제한다. 무명의 안무가가 모델로 등장해 스스로 영화를 찍는 ‘셀프 무비’가 콘셉트. 경쾌한 음악이 들리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이 저마다 비를 피하느라 분주하다. 그 모델은 빗속에서 유연한 움직임으로 빗방울을 피하는 모습을 카메라폰으로 촬영한다. 마치 춤추듯이 촬영된 화면을 동영상 메일로 친구에게 보낸다.
이 광고에 나오는 말은 ‘내 뮤직비디오야’와 ‘스카이 It's different’라는 단 두 마디다. 새로 선보인 슬라이드폰의 첨단기능 가운데 하나인 동영상 메일 전송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뱅뱅
뱅뱅 광고(대홍기획 제작)의 무대는 지하철 안. 젊은이들이 지하철 안에서 신나게 춤추며 젊음을 발산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젊은 층의 모습이 보이다가 ‘이기는 옷, 뱅뱅’이라는 멘트가 나오며 끝난다. 이긴다는 것은 친구들간의 건전한 경쟁에서 이김을 뜻하기도 하고, 몸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이김의 뜻이며, 뱅뱅 브랜드의 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족주의 캐주얼웨어 업체인 베이직하우스의 광고(도어커뮤니케이션즈 제작)도 마찬가지. 화장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나오는 멘트는 ‘움직임이 좋다’와 ‘This is Basic’이라는 말 뿐이다. 제일기획이 만든 KTF광고 ‘횡단보도편’도 ‘Have a good time, KTF’라는 말만 나온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