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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뻔뻔한 백수-엽기 백조 '위대한 유산'

입력 | 2003-10-20 17:14:00

탄탄한 줄거리와 재치 넘치는 대사로 시종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낸 ‘위대한 유산’.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온 종일 빈둥거리다 출출해지면 백화점 무료시식코너를 한 바퀴 돌고, 틈나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 들러 허영만 만화 ‘타짜’ 2권이 반환됐는지 챙기는 창식(임창정). 연기력이 안 따라줘 탤런트 선발시험에서 매번 미역국을 먹는 비디오 가게 딸 미영(김선아).

‘위대한 유산’(감독 오상훈)에서는 뻔뻔하고 쫀쫀한 두 ‘백수’와 ‘백조’가 만나 한 치 양보 없는 대결을 펼친다. 청춘남녀가 처음엔 으르렁대다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얼개에 조폭의 등장, 출생의 비밀까지 곁가지로 더해져 웃음의 키워드를 푸짐하게 선사한다.

비디오 가게에서 연체료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온 창식과 미영. 어느 날 잔돈을 벌기위해 심부름을 다녀오던 미영과 담배를 사러가던 창식이 길에서 부닥친다. 창식이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잃어버리자 두 사람은 길에서 ‘백원만 달라’ ‘못주겠다’ 하며 티격태격하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창식은 다음 날 목격자에게 사례금 500만원을 준다는 현수막을 보고 돈 욕심에 미영 몰래 그들에게 연락을 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바로 뺑소니사고를 낸 조폭들. 미영도 이미 잡혀와 있다. 트렁크에 갇히게 된 두 사람은 탈출을 궁리한다.

뺑소니사고를 당한 노인은 엄청난 부자인데다 잃어버린 자식까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산의 주인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후반부의 맥을 이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진짜 후계자가 누구였는지가 공개돼 마지막 폭소를 자아낸다. 다 보고 나면 어떤 장면이 가장 웃겼는지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영화 내내 자연스럽게 웃음을 이어가는 힘이 있다. 재치 넘치는 대사와 상황 설정, 탄탄한 이야기 덕분에 영화는 유치하거나 황당한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김선아는 깜찍하면서도 능청맞고, 섹시하면서도 어리숙한 표정 연기로 영화의 무게 중심 역할을 한다. 그는 예쁜 얼굴에 집착하지 않고 뜨거운 라면을 먹다가 도로 뱉어내거나 술이 떡이 돼 토하는 ‘엽기적인 그녀’로 등장한다.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임창정을 비롯, 고스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미영의 엄마 김수미, 초등학교 동창인 시동생을 구박하는 ‘공포의 형수’ 신이, 미영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가는 ‘배달의 기수’ 공형진 등도 제 몫을 한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백조’ ‘백수’란 설정을 빌려왔을 뿐 이 영화의 전체적 내러티브와 ‘청년 실업’의 연관성은 찾기 힘들다. 소박한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오 감독의 연출력 정도면 사회성 있는 코미디에 대한 욕심을 부려볼 만도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첫 영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