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야마현의 한 제약회사 직원이 관광객들을 위해 에도시대의 전통 약품 제조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도야마=박원재특파원
일본 중서부 도야마(富山)현 청사 3층 회의실. 나카오키 유타카(中沖豊·76) 지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들어서자 일본 열도를 거꾸로 그린 큼지막한 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나카오키 지사가 아이디어를 낸 이 지도는 한반도와 일본, 러시아의 극동 지방이 동해를 감싸는 형태를 표현한 것. 재임경력 23년으로 현역 최장수 지사인 그는 “도쿄(東京) 쪽에서 보면 도야마가 변방에 불과하지만 동해를 중심에 두면 한반도의 동해안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첫선을 보였을 때는 터무니없는 시도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지금은 도야마현 관광안내소의 기념품 판매순위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도야마현 관계자는 “한국과는 바다 명칭을 둘러싼 대립이 있어 조심스럽지만 명칭 문제와는 별개로 넓게 보면 같은 생활권인 만큼 지방자치단체간에 공동번영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었으면 한다”며 “지금도 강원도와 문화 스포츠 등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야마는 면적과 인구가 일본 전체의 1%에 불과한 작은 현이지만 가구당 소득 및 자동차 보유대수는 혼슈(本州) 1위인 부자 동네다. 자동차 전자 등 대규모 공장은 없지만 300여년 전 에도(江戶)시대부터 일본의 전통한방약품 생산지로 유명했던 전통을 살려 바이오산업 분야를 특화했기 때문.
도야마현은 일본의 장기불황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 지역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산관학(産官學) 공동프로젝트로 휴양시설과 연계된 세계 제일의 바이오 복합단지 조성에 나섰다.
도야마의약대는 전통 의학과 서양 의학을 접목시키는 연구를 통해 몇 대째 가내공업 형태로 가업을 잇는 중소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을 돕고 있다. 이 대학 민속약품자료관은 한국 중국 인도 티베트 이집트 등 세계 각국에서 민속약재로 쓰여 온 재료 2만여점을 전시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보관자료는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해 외국 제약업체들에도 무료로 개방한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 한방의학의 중심지는 일본의 도야마라는 인식을 넓혀 나가는 게 목표”라고 고마쓰 가쓰코(小松かつ子) 교수는 말했다.
‘다케오카 자동차’라는 중소기업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혼자 힘으로 승하차하고 운전도 가능한 1인용 휠체어식 전기자동차를 개발해 병원과 휴양시설 등에 납품하고 있다. 도야마현측은 은퇴한 각국의 돈 많은 노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진료와 휴양, 취미생활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복합시설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카오키 지사는 “평균수명 연장으로 ‘인생 90년’이 현실이 된 만큼 여기에 맞춰 도야마를 동북아시아의 의료휴양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전 세계의 환자가 이곳에 와서 병을 고치고 자연을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북유럽의 강소국을 모델로 삼아 도야마는 ‘덩치는 작지만 주민은 부유한’ 이상적인 자치단체의 꿈을 키우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