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거짓말을 통해 독일 현대사를 솜씨좋게 담아낸 ‘굿바이 레닌’.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교사인 크리스티아네(카트린 사스)는 베를린 장벽 제거를 주장하는 시위에 참여한 아들 알렉스(다니엘 브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쓰러진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어머니는 8개월 뒤 의식을 찾는다. 그 사이 사회주의 동독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알렉스는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아파트를 과거 동독 시절의 모습으로 바꿔놓고 동독의 발전상을 담은 거짓 TV 뉴스를 비디오로 찍는다.
영화 ‘굿바이 레닌’(감독 볼프강 베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족 문제와 독일 현대사를 아우른 작품.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거짓말이라는 ‘작은 그릇’에 20세기 최대 사건의 하나인 ‘통독(統獨)’을 담아낸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영화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알렉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한 ‘귀여운’ 거짓말을 따라가다보면 가족의 의미와 통독의 후유증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전달된다.
‘굿바이…’는 통독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 그늘도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알렉스의 엄마가 평생 모은 동독 돈은 서독 돈과 교환해주는 시한을 넘기는 바람에 그냥 휴지가 됐다. 알렉스의 누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햄버거 가게의 종업원이 됐다. 동독에서 존경받던 이들 가족은 통독 이후 게으르고 무능한 ‘2류 시민’으로 전락했다.
가족에 남겨진 상처의 치유도 쉽지 않다. 알렉스는 엄마를 위해 통독 이전 서독으로 망명한 아버지를 찾지만 상봉한 부자(父子)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2003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유럽영화상 수상작. 독일에서는 625만명의 관객을 기록해 자국 영화사상 흥행 2위를 기록했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