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학습용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사 주는가, 게임용이라고 사 주는가. 컴퓨터 사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게임 때문에 부모를 조르지만 공부를 핑계 댄다. 부모는 아이의 속내를 알면서도 ‘그래도 공부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지갑을 연다.
최근 만난 한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 직원은 “MP3 플레이어가 단순히 음악 청취용이라면 인기를 못 끌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은 ‘유명 강사의 강의내용도 MP3 파일로 만들어 들을 수 있단 말이야’라는 말 한마디로 부모의 동의를 받아낸다”고 말했다.
TV와 연결해 사용하는 게임기(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와 MS의 엑스박스)는 ‘공부 기능’이 없어 판매 실적이 좋지 않다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컴퓨터와 달리 게임 기능밖에 없는 제품을 선뜻 사 줄 ‘강심장’인 한국 부모는 없다는 것.
여기다 “다른 집 아이들은 전부 고급 사양의 컴퓨터나 MP3 플레이어를 쓰고 있다”고 하면 부모에게 거의 직격탄을 날리는 셈이다.
부모들은 집에 있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의 처리속도가 얼마이고, 주 기억장치와 보조기억장치의 크기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게임을 하는 데 적절한 사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256메가바이트짜리 MP3플레이어에는 일반 테이프의 5배쯤 되는 60여곡이나 들어간다는 사실도….
부모 세대의 높은 교육열과 다른 사람의 소비행태를 따라가는 문화가 정보기술(IT) 제품의 판촉과 절묘하게 연결된 셈이다.
이렇게 구입한 컴퓨터로 아이들은 게임을 한다. 네트워크 게임은 그래서 세계 강국이 됐는지 모른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 중에는 여학생을 미행하고, 미행에 성공하면 성폭행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위험한 부류도 많다.
아는 게 힘이다. IT 제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으면 구입 단계부터 자녀와 협상을 할 수 있고, 그 제품을 아이들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알기 힘든 용어가 가득 찬 설명서를 보면 골치가 아프다고 애써 모른 체 하고 있지는 않는가. ‘첨단 제품이니 교육에도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금물이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