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필자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책을 잘 사 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주 가끔 한 권을 사 주면 아이는 너무 좋아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하곤 한다. 이 모습을 본 한 이웃은 “우리 아이는 책을 사서 안겨 줘도 안 읽는다”며 “책을 저렇게 좋아하니 집에 책도 많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애도 다른 또래들과 다를 바 없다. 독서량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고 책도 별로 없다.
나는 아이가 책을 사 달라고 하면 인터넷에서 쉽게 신청하기보다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드디어 아이와 서점에 갈 날짜를 약속하면 아이가 직접 책을 골라 들고 나오게 한다. 그렇게 가끔 들르는 서점에서 아이는 자기의 관심사를 넓히면서 다음에 구입할 책을 점찍어 두기도 한다.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약간은 까다롭게 굴어야 책이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주변에 항상 수북이 쌓여 있다면 별 흥미를 못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의 수많은 책 중 아이가 직접 고른 책은 ‘내 것’이라는 점에서 큰 기쁨이 된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책을 읽는다.
요즘 아이들은 장난감, 옷, 돈 등을 너무 쉽게 얻는다. 심지어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준비돼 있다. 이 모든 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무엇이든 쉽게 얻게 되면 대상의 가치를 느낄 기회와 흥미를 빼앗긴다.
얼마 전 대학생들의 리포트가 남의 것 베끼기로 일상화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MP3 등 음원의 불법 사용에 대한 법적 대응에 대해 사용자들은 “뭐가 문제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너무 쉽게 얻으니 남의 노력과 성과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려고 하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얻는 것의 기쁨을 배운다면 과정의 즐거움과 상대방이 이룬 성과의 가치를 알게 된다.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얻는 일의 소중함을 가르쳐 보자.
이혜숙 가요칼럼니스트·서울 강남구 수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