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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원스 어폰 어 타임…' 액션 판타지… 가을을 쏜다

입력 | 2003-10-23 17:15:00

멕시코의 전설적 영웅 '엘 마리아치' 역으로 출연해 속도감 넘치는 액션을 보여주는 안토니오 반데라스.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는 한껏 멋있는 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통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출한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혁명, 탐욕, 그리고 복수를 소재로 만든 액션영화로 ‘데스페라도’(1995)의 속편 격이다.

부패한 CIA요원 샌즈(조니 뎁)는 아내를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조용히 살아가던 엘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끌어들인다. 샌즈는 멕시코의 마약왕 바리요(윌리엄 데포)의 쿠데타를 막기 위해 그의 오른팔인 마르퀘즈 장군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한다. 마르퀘즈는 마리아치의 아내를 죽인 원수. 마리아치는 마르퀘즈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B급 영화’의 이미지를 기묘하게 풍기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다.

▽엘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주인공 마리아치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는 데 이 영화의 초점이 있다. 마리아치는 수십 개의 총구가 겨누어진 순간에도 모래바람에 단발머리를 날리며 우울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악당을 무참히 처치한 뒤 두 눈을 감고 성호를 긋는가 하면,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휙’하고 휘파람을 불어 악당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이런 표정과 연기는 반데라스의 장기지만, 반대로 그를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다. 그는 좀 더 창조적이어야 했다. 출연 장면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하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자연히 이야기 구조는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샌즈(조니 뎁)=부패한 CIA 요원의 이미지는 뻔하다. 그러나 조니 뎁은 장난기와 냉소, 낭만이 합쳐진 표정으로 참신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샌즈는 단 한 번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지만 존재 자체가 슬퍼 보인다. 조니 뎁의 힘이다. 그의 재능을 얄팍한 시나리오가 따라오지 못한 감이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샌즈가 벌이는 ‘1인 퍼포먼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CIA’란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다. 정체를 보란 듯이 내보이는 장난기다. 악당 바리요에 대한 공격 작전을 멕시코 특수요원 아헤드레즈와 상의하는 장면에서는 ‘난 바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아헤드레즈 요원이 악당 바리요의 딸임을 전혀 모르는 자신을 비웃는 셈이다.

▽빌리 챔버스(미키 루크)=두목 바리요의 측근인 빌리는 애완견 치와와와 한치도 떨어지지 못하는 악당이다. 전직 CIA 요원의 간단한 협박과 사기에 나약하게 넘어가는 인물. 그가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해야 “내 전공은 이런 게 아닌데”하면서 끈으로 남의 목을 조르는 것 정도다. ‘엔젤 하트’ ‘나인 하프 위크’ 등에서 악마적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미키 루크가 개성 없는 조연으로 전락해 버려 슬프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