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강동영기자
《‘영원한 동지, 나의 보람. 크건 작건 내 몸과 마음의 작품인, 나의 아이.’ 부모가 아이와 함께 풀어나간 두 가지 해외 체험이 각각 책으로 묶였다. 중국 벽지로 찾아들어 2년을 산 엄마와 남매는 여행의 마지막, 자유롭게 ‘중국어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게 됐고 큰딸은 명문 베이징대 입학허가서도 얻었다. 아빠와 아들 단둘이 헤쳐나간 미주 유럽 여행을 통해 아이는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와 세상을 바라보는 넉넉한 시선을 얻었다. 부모와 아이들이 펼친 ‘2인3각’, ‘3인4각’의 여정을 소개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아들과 함께 한 특별한 여행/김세걸 지음/327쪽 8500원 민미디어
엄마는 아이에게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대와 우등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학 박사인 아빠는 유럽의 문화유적지를 돌며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려 했다.
타협의 결과, 미주와 유럽을 두루 거치는 코스가 결정됐다. 단 두 사람, 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 아들만의 동행. 직장생활에 묶인 엄마와 어린 막내는 집에 남았다.
아빠의 여행 목표 세 가지는 나쁜 버릇 고쳐주기와 올바른 가치관 심어주기, 그리고 분석적 사고력 키워주기. 긴 여정 동안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하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말할 때도 짜증 안 내고 당당히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버릇 고치기’는 체크만 해 나가면 된다. 둘째와 셋째 목표는? 아빠의 비결은 ‘끊임없는 대화’.
아이에게는 공항 면세점부터 산 공부가 됐다. 세금은 뭔가. 왜 나라가 세금을 매겨야 하는가. 아이가 묻고 아빠가 대답하는 동안, 아빠에게도 새삼 숙고해야 할 재료가 가득해졌다. 대답을 준비하면서 아빠의 생각도 넓어졌다.
파리에서는 철도파업을 만나 노르망디 여행계획이 무산됐다. 왜 파업을 하나. 누가 나쁜 쪽이고 누가 좋은 쪽인가. 다민족국가인 스위스에서는 ‘민족국가’의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 더 센 나라가 되려면, 프랑스어 쓰는 사람들은 프랑스에 합치고, 독일어 쓰는 사람들은 독일에 합치면 좋지 않아?”
컴퓨터 게임과 할리우드 영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아이는 ‘더 크고 센 것’에 유독 집착했다. ‘나쁜 편과 좋은 편’의 편 가르기에도 열심이었다. 아빠는 답하고 생각하며, “아이에게 절대적 선도, 절대적으로 잘난 이도 없다는 다원적 가치관을 심어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와 스위스에서는 작지만 행복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현장인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영웅들 뒤에 숨어 역사를 발전시켜온 수많은 무명인들이 있었음을 깨우쳐주었다. 한 달이 넘는 여행 동안 아이는 몸도, 마음도 훨씬 의젓해졌다.
전 유럽의 철도 노선과 일정을 검색할 수 있는 독일철도청 사이트(www.bahn.de), 외국인에게만 철도 할인혜택을 주는 ‘유레일 패스’에 대한 상세한 소개 등 실용정보도 쏠쏠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중국행/박성란 지음/319쪽 9000원 태동출판사
딸은 ‘범생이’였다. 자기 코앞의 일밖에 생각할 줄 몰랐고, 학교 밖의 세상살이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가슴에 넓은 세상을 가득 담아주고 싶었다.
‘그런 대로 잘나가는 남편’을 놓아두고, 고등학교 1학년생 딸,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과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는 중국어라곤 ‘니하오(안녕)’ ‘셰셰(고마와요)’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니었다. 이왕 갈 바에야 중국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말을 배우는 게 좋겠다 싶었다. 한국인도 인터넷도 없는 외진 곳을 택했다. 베이징보다 훨씬 싼 생활비도 낙점에 한몫을 했다.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
역사 유적이 많지만 중국에서도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황토 고원지대였다. ‘국제학교’ 구내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거리에 희뿌옇게 흐르는 매캐한 석탄냄새며 회색빛 담 위의 철조망이 못내 우울했지만, 강당처럼 거대한 슈퍼마켓과 식당 등의 시설은 큰 나라의 면모를 확인시켜주었다. 교장선생님과 보일러공이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식당 풍경에서 새삼 중국의 가능성을 실감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불편을 점차 잊어가는 동안 ‘중국어의 바다에 빠뜨리기’ 전략은 점차 성공을 거두었다. 세 가족은 설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노점상의 음식으로 끼니를 채울 만큼 ‘현지화’ 됐다. 아들은 중국 아이들과 어울리며 붉은 스카프를 매고 사회주의식 경례도 어색해 하지 않았다. ‘한류(韓流)’ 열풍이 주는 으쓱함은 아이들이 빨리 현지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일상을 벗어난 풍요한 체험을 위해 여행도 부지런히 다녔다. 버스 보조의자 위에서 흔들리며 여섯 시간을 무표정하게 달리는 중국인들의 인내력에도 감탄하고, 시골의 ‘토굴 숙소’에 머물며 현대와 원시가 공존하는 중국의 또 다른 면을 실감했다. 네이멍구(內蒙古) 여행에서는 ‘게르’ 안을 돌아다니는 들쥐들을 보고 기겁하기도 했다.
‘사스’ 파동의 와중에 딸은 베이징대에 합격했다. 곁을 지키지 못해 못내 서운했던 아빠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대로 잘나가는’ 아빠는 누구? 저자가 밝히지는 않았지만, 시인 안도현이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