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학기술자들이 대단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묵묵히 연구에 전념했던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고 한다. 미래 전망이 비관적이라고 판단한 서울대학교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다시 진학하기 위해 자퇴한다는 소식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과거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드라이브 아래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정책적으로 받았던 많은 혜택과 높은 대우, 그리고 그들이 지녔던 자부심 등을 현재의 의사, 변호사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이 화가 나 있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들고 나왔던 ‘과학기술 중심 사회의 구현’이라는 모토는 이러한 과학기술자들의 분노와 이공계 기피라는 과학기술계의 위기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방안’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8월에 확정되었고,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문적인 과학기술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공직에 이공계 출신자들이 많이 진출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과학기술자들이 맡아야 적합한 자리에 비이공계 출신자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우리 사회는 분명 잘못됐다. 그렇지만 이공계 출신이 대거 공직에 진출한다고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구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의 공직 참여를 적극 주장하는 이들은 흔히 우리의 잘못된 실정을 이웃 중국과 비교하곤 한다. 즉 중국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모두가 이공계 출신임에 비해서 노무현 정부의 장관급 이상 21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단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우리의 이공계 교육이 중국과 다르게 비정상이라는 사실이다.
베이징대학의 이공계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 못지않게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배운다. 그들은 정치와 국가경영, 그리고 비즈니스 능력과 마인드를 인문사회 계열 출신자들 못지않게 대학에서 배운다. 이에 비해 우리 이공계 교육은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몇 개의 교양 인문사회 과목을 듣는 것이 전부다. 인사권자가 관리직에 이공계 출신 기용을 꺼리는 것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정상이 아닌 것은 이공계 교육만이 아니다.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 계열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초적인 과학지식과 과학원리를 거의 배우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숫자나 방정식 계산만 나오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 인문사회계 출신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적인 과학기술 지식을 필요로 하는 관리직에 비이공계 출신이 기용되는 것을 보면서 탄식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유가 있다.
이공계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공계 출신 공직 확대를 통한 과학기술 중심 사회의 구현’ 주장에 전적인 공감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단지 ‘과학기술자 우대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인문사회계 출신이 잘못 맡았던 자리를 이공계 출신자들이 맡는다고 해서 정상이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질을 바꾸지 않고 단지 현상을 구제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과학기술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공직에 과학기술자들이 진출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에 앞서 이공계 교육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2001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은 ‘과학기술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되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 상호 균형적으로 연계 발전되도록’ 할 것을 기본이념으로 정하고 있다.
바람직한 이공계 교육의 방향을 담은 내용이다. 이공계 교육의 개혁은 인문학과 과학을 분리해서 파악하는 뿌리 깊은 인식의 지양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과학이 인문학과 분리되었을 때 그것은 도구에 불과하다.
문중양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자연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