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타자에겐 절대로 슬로커브를 던지지 마라.’
야구계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이다. 슬러거에게 슬로커브는 일발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하지만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 선발 채병룡(사진)은 이 불문율을 깨고 승리를 따냈다.
SK가 2-0으로 앞선 가운데 6회초 수비 2사 1, 2루. 타석엔 현대의 간판 심정수가 들어섰다. 큰 것 한방만 맞으면 역전될 수도 있는 최대 위기 상황.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채병룡은 초구에 112km짜리 느린 커브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뒤 2구째에도 97km짜리 슬로커브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129km짜리 포크볼로 내야땅볼을 유도해 위기를 탈출.
채병룡이 슬러거 앞에서 슬로커브를 연달아 뿌린 것은 자기 공에 대한 자신감이 확실했기 때문.
MBC-ESPN의 차명석 해설위원은 “투수는 ‘내가 이 공을 던져도 안 맞는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절대로 100km도 안되는 느린 공을 강타자에게 던질 수 없다. 그만큼 채병룡은 자기 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100%의 컨디션이었다”고 분석했다.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투수가 느린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피칭에 눈을 뜨게 된다”고 했다.
올해 한국시리즈 3차전과 6차전에서 연거푸 승리를 따낸 채병룡은 적어도 올 포스트시즌에서만큼은 ‘눈을 뜬’ 모습이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