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과 박승 한국은행 총재를 재신임 투표에 부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김 부총리와 박 총재는 올해 초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최근까지 경기가 계속 추락하면서 대통령 재신임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됐지만 두 경제 총수는 여전히 낙관적 전망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에는 ‘올 하반기에 틀림없이 좋아진다’에서 지금은 ‘내년 상반기에 반드시 좋아진다’는 식으로 일관된 톤을 유지하고 있는 것. 하반기 전망이 틀린 것은 옛날 얘기이니 따질 것 없고, 내년 상반기 전망에만 신경써 달라는 게 이들의 주문인 것 같다. 경기낙관론의 의도는 소비자와 기업가들이 미래를 낙관하도록 하여 현재의 소비와 투자를 늘리도록 하려는데 있다. 이 같은 의도대로 되려면 정책당국자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김 부총리 등이 말만 앞세운 것은 아니다. 한은은 금리를 계속 내리고 돈을 풀어댔다. 재경부도 추경 편성을 통해서 정부 씀씀이를 늘릴 수 있는 데까지 늘렸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엉뚱하게 진행됐다. 김 부총리를 뺀 모든 경제주체들이 올해 성장률을 2%대로 내다보고 있고, 투자와 소비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다만 서울 강남 집값은 1년 새 대략 2배 가까이 올랐다. 게다가 앞으로도 부동산불패의 신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시장참가자들이 급증했다. 경기는 활성화하지 않고 부동산투기만 불러온 셈이다. 현 경제팀의 경제성적표를 매기면 성장률 0점, 투자와 소비 0점, 부동산투기 100점일 것이다.
이러다 보니 김 부총리와 박 총재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겠다는 사람들만 늘어났다.
정책 당국자의 신뢰는 공약, 의도, 능력 등 세 가지에 대한 신뢰로 이뤄진다.
김 부총리가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고 강남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했을 때 시장 참가자들은 공약과 능력을 살핀다. 정부가 과연 자신의 공약을 진정으로 지킬 것인지, 그리고 그 공약을 실현시킬 현실적 수단과 지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장참가자들이 정부의 공약을 하나의 블러핑(bluffing·허풍)으로 치부해 버리고 능력도 없다고 여긴다면 경기회복과 부동산투기 억제 대책의 효과는 반감된다.
지금의 시장 분위기로 봐선 시장참가자들이 현 경제팀을 ‘무능한 허풍쟁이’로 보는 것 같다. ‘무능한 정부의 말을 믿고 행동했다간 자기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터득한 시장참가자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게다가 현 경제팀의 실패는 엉터리 공약을 뒷받침하려 한 빗나간 의도까지 겹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연 7% 성장률은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였다. 이 목표는 장기적인 비용(신뢰의 상실)과 단기적 이익(득표)을 맞바꾼 기회주의의 산물로 봐야 한다. 결국 잘못된 뿌리로부터 나온 ‘경기낙관론’은 그 의도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의도의 신뢰마저 상실한 것이다.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는 엄청난 정치적 혼란과 국론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지만 현 경제팀의 재신임 여부는 경제회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경기회복과 부동산투기 억제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책 당국자의 신뢰 회복이기 때문이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