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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기관 “배당 적을땐 책임물어"…기업들 배당규모 고민

입력 | 2003-10-26 17:46:00


한 해 실적의 윤곽이 드러나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업들이 배당규모를 두고 고민에 빠져있다.

외환위기 이후 주주 중심 경영이 확산되고 외국인 주주의 지분도 늘어나면서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고 있지만 고(高)배당에 대한 압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 올해부터는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투자기업에 대해 “배당을 적게 할 경우 임시주총을 소집해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포스코 재무팀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이 63%에 이르고 배당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고민 중”이라며 “경영진간에 또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간에 배당 정책을 놓고 의견 충돌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전에는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액 비율)이 10% 수준이었지만 작년에는 25.9%로 높아졌다.

현금배당 추이 (단위:억원) 상장기업코스닥기업1996년1조1052-1997년8446-1998년1조2421-1999년2조586212292000년3조216834832001년3조085449542002년4조63054879자료:증권거래소, 코스닥위원회

경영권 분쟁이 있는 기업의 고민은 더 크다.

외국계 투자펀드인 소버린과 경영권 갈등을 겪고 있는 SK㈜의 관계자는 “경쟁사인 에쓰오일이 고배당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고배당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최근의 고배당 압력은 지나치다’는 불만도 갖고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이인실 박사는 “성숙기에 접어든 선진국 기업은 배당을 많이 하는 것이 주주에게 이익이지만 성장여력이 아직 많은 한국기업이 투자규모를 축소하고 배당을 하면 성장률이 떨어져 장기적으로는 주주에게도 손해”라고 지적했다.

상당수 기업들은 이런 고민도 해결하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기 위해 일정수준의 배당을 유지하면서 자사주 매입이나 주식 소각을 병행하고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거나 소각하면 주식의 유통물량이 줄어들고 기존주주의 지분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또 자사주는 기업이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2000년 5조6742억원에서 작년에는 9조1192억원으로 늘었다. 주식 소각 역시 2000년 한해 1627억원에서 작년에는 2조6117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10월 말 현재 3조7792억원으로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한국증권연구원의 한상범 박사는 “주주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고배당’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는 투명한 경영과 재무전략”이라며 “경영진이 배당보다 신규투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더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를 주주들에게 설득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