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에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 국세청의 주요 간부와 세무서장들이 모여 세정 혁신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세청장이라는 자리는 정부조직법상 차관급이지만 정부 내의 기능이나 영향력으로는 장관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24년간 국세공무원으로 일한 김종상(金鍾相)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퇴임 뒤 펴낸 책 ‘국세청 사람들’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사권과 과세권 등 막강한 힘을 가진 국세청은 조직도 ‘매머드급’이다. 본청과 서울청 등 6개 지방청, 전국 99개 세무서에 1만6850명(작년 말 현재)이 근무한다.
국세청은 철저한 보안의식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하다. 제5대 국세청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간 안무혁(安武赫)씨가 안기부의 보안이 허술하다며 “국세청 직원을 본받아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끈끈한 동료애로 인해 ‘국세청 마피아’라는 소리도 듣는다. 최근 부산청에 근무하는 직원의 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국세청 인트라넷을 통해 알려지자 1000여명에 이르는 동료가 자발적으로 성금 모금에 참여했고 서울 등 수도권 세무서 직원 수백명이 헌혈을 했다.
국세청의 ‘꽃’은 단연 조사국이다. 탈세한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국은 조직 안에서 영향력도 가장 크다. 특히 본청 조사국은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에 비교된다. 조사국장을 ‘국세청의 중수부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방청에서도 조사국의 위상은 남다르다. 특히 수석국장격인 조사1국장은 조사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정보의 허브’ 역할을 한다. 조사국은 힘이 센 만큼 일의 강도도 높아 조사국 직원 중에는 ‘올빼미형’이 유난히 많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청사의 조사국이 있는 2∼5층과 9층에는 자정 무렵에도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다.
역대로 조사국장은 1급(관리관)으로 승진하는 지름길이었다. 이주석(李柱碩) 현 서울청장, 봉태열(奉泰烈) 전 서울청장, 손영래(孫永來) 전 국세청장 등이 모두 조사국장 출신이다.
국세청에서 이용섭(李庸燮) 청장 아래 1급은 모두 3명. 이주성(李周成) 차장, 이주석 서울청장, 최경수(崔庚洙) 중부청장 등이다. 서울청과 중부청은 청장이 1급인 덕분에 나머지 지방청과 위상이 다르다.
특히 이용섭 청장과 최경수 중부청장은 ‘김진표(金振杓) 사단’으로 분류된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함께 모두 재경부 세제실 출신인 까닭이다.
국세청장 가운데 장관에 임명된 사람이 유난히 많다.
초대 청장인 이낙선(李洛善) 전 상공부 장관(66∼69년)부터 제12대 청장인 안정남(安正男) 전 건설교통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7명의 장관이 나왔다.
이는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세무조사를 선별해 실시하는 등 국세청이 정권 안보의 ‘도구’ 역할을 했던 과거의 불행한 역사와 관계가 있다. 권력 최고위층과 인연이 없으면 국세청장이 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국세청 고위직에 관한 얘기일 뿐 일반 국세청 공무원의 최대 관심은 승진이다. 국세청은 다른 부서에 비해 승진이 유독 늦은 편이다. 9급 공채로 들어와 5급(사무관)까지 승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균 32년10개월이다. 전체 국세공무원 가운데 5급 이상 1100명(6.5%), 4급 이상은 320명(1.8%)에 불과하다.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도 4급(서기관)으로 ‘퇴청’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이 문을 연 1966년에 9급 공채로 들어와 현재 3급(부이사관)으로 근무 중인 조용근(趙鏞根) 서울청 납세지원국장과 김문환(金文煥) 본청 총무과장은 이례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승진뿐만 아니라 전보인사를 둘러싼 경쟁도 만만치 않다. 객지 근무를 기피하는 탓이다.
인사를 둘러싼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국세청은 인사민원 등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최근 전자인사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용섭 청장은 최근 5, 6급 직원의 비율을 높여 인사에 ‘숨통’을 트겠다는 목표 아래 관련 직제 개정안을 행정자치부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국세청 대민부서 하급직원의 경우 오히려 고위직으로 승진하기를 꺼린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김문환 총무과장은 “‘승진’을 마다할 공무원이 있겠느냐”며 이를 일축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