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남북한의 체제갈등 구조는 많은 가족의 원치 않는 이별을 초래했다. 특히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경우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북한에 억류돼 있으니 심각한 인권유린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냉전기간에 남북한 정치적 상황 및 이데올로기 대립에 밀려 등한시돼 왔다.
▼국제여론 조성해 北 압박을 ▼
2000년대 들어 남북간 각종 회담이 열리면서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를 몇 차례 제기했지만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북한의 반발로 모처럼의 대화 및 관계개선 기회가 무산될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이런 점에서 24일 국방부가 북한 내에 국군포로 500명이 생존해 있으며, 앞으로 남북회담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송환노력을 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휴전협정 당시 남한은 국군 8만2000여명이 북측에 포로로 억류돼 있다고 추정했으나 8343명만이 송환된 채 협상은 종료됐다. 사실 1951년 6월 시작된 휴전회담이 2년1개월 이상 지속된 주 원인이 바로 포로송환 문제에 대한 양측의 엇갈린 주장 때문이었다. 유엔군은 정전 이후에도 196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포로송환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1954년 1월 제3차 포로교환 이후 “북한 내 국군포로는 단 한 명도 없다”며 협의 자체를 거부해 버렸다. 이번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귀순자와 탈북자, 실종 군인의 국내 연고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파악된 북한 억류 국군포로는 생존 500명, 사망 507명, 행방불명 179명 등 총 1186명이다. 북한이 일절 불문에 부치고 있으니 더 이상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전쟁포로의 경우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까지 강제송환할 필요는 없다는 국제법적 선례(제네바협약 제118조)가 수립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미귀환 국군포로의 송환 거부 의사가 억류국인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확인된 것은 유감이다. 따라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유엔 인권위원회 등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국제기구의 개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유엔 결의안은 인권위반국에 대한 국제적 제재 등의 기준으로 사용되므로 북한에 실질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대한적십자사, 재향군인회 등과 같은 국내 비정부기구(NGO)들을 통해 국제 여론을 조성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일본 정부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냈고, 이들의 생사 확인과 송환 문제를 북-일 수교의 최우선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뿐 아니라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 및 20일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이를 이슈화했다. 미국의 경우 1996년 이후 어마어마한 비용을 부담해 가면서 북한과 미군 유해 발굴 공동작업을 벌여 현재까지 250구가량을 인도받았다.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정권에 대해 지속적인 ‘호의’를 보임으로써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킨다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남북대화 등에 임하는 북한의 제반 태도들에서 입증됐듯,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의 정책과 상관없이 한반도 주변 강국과의 관계 및 북한이 처한 상황, 그리고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 설혹 우리의 ‘햇볕’이 북한정권을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더라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사정은 급박하다.
▼할말은 하는 남북관계 필요 ▼
이와 관련해 명심해야 할 점은 북한정권의 이익과 북한주민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 지원이 자칫 기아선상에 있는 주민을 방치하는 북한체제를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정권과의 대화와 교류 및 협력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겠지만, 인권과 인도주의 등 인류보편적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대북관계의 기본전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북관계, 이제 할 말은 하자. 그리고 그 말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신화 고려대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