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에 따라서는 그것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의 이해관계와 상충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정책결정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자신을 선출해 준 선거구민에 대한 의무로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만약 이때 국회의원들이 선거구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선택을 한다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국정과제의 실현은 난관에 처해 아예 무산돼 버리거나 본래의 목표가 왜곡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많이 경험해 왔다.
▼지역간 갈등…고민하는 議員들 ▼
그 같은 우려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안’이나 ‘지방분권 특별법안’의 제정에서도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인다. 10월 15일 이들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되자 경기도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13명이 고건 국무총리를 만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안’이 수도권 대 비(非)수도권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 따라 수도권을 지방 범주에서 제외시킨 것은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고 결국 전국토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른바 ‘수도권 역차별론’을 제기하면서 법 제정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한 일이 그러하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수도권 출신 의원들의 입법저지 움직임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는 국정과제가 특정지역의 이익과 국가이익의 대립을 가져올 때 특정지역 출신 의원들이 빠질 딜레마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어떤 역할을 선택하는가에 달렸다. 선거구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대리인’의 역할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신념과 원칙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수탁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정치현실에 견주어 보면 이 두 역할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딜레마는 상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 갈등의 딜레마를 원칙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로 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국회의원의 의무를 선거구민의 기본적 가치의 구현에 두느냐, 아니면 선거구민의 의견을 추종하는 데 두느냐를 구별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선거구민의 기본적 가치란 목표에 대한 장기적 비전, 지속적인 지향성을 말하는 반면, 선거구민의 의견은 목표에 대한 단기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실리 지향성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국회의원은 자신을 선출해 준 선거구민의 장기적 가치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옳다. 그들의 관점이 선거구민의 의견을 넘어 탁월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안’은 선거구민의 기본적 가치지향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법안이 추구하는 목표는 지역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통해 모든 지역의 발전 잠재력을 함양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더라도 기본적인 삶의 기회를 향유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내생적 발전전략을 통해 지방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자립형 지방화’를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핵심은 전국 최소기준의 충족을 통한 ‘통합적 균형’과 지역의 잠재력과 비교우위를 극대화하는 ‘역동적 균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간 초기 조건의 균형이 필요하므로 전국 최소기준에 미달하는 낙후지역에 대한 정부투자의 확대 등 통합적 균형을 통한 기회균등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장기적으로 효과 모두에 혜택 ▼
여기서 수도권이 당장은 불이익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의 혼잡비용을 줄이고 기본적 공공 서비스의 공급비용을 낮추는 등 파급효과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 선거구민들의 장기적 가치지향이 된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위임권은 선거구민의 현실 문제에 집착하라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가치와 그 지향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의원들의 치우침 없는 의견과 원숙한 판단, 밝은 양심은 아무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