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소리로’ 지휘자 박제응씨(가운데 손을 든 이)와 단원들이 26일 오전 “우리 단원들 노래를 한번 들어보면 누구나 반한다”고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이동영기자
성악가 박제응씨(39)는 일주일에 세 번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을 찾는다.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강의나 개인 레슨, 자신의 연습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쪼개 이곳을 찾아 중증 장애인으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지휘를 맡고 있다.
국내 음대를 졸업하고 1989년 밀라노의 베르디국립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밀라노시립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98년 귀국해 곧바로 ‘영혼의 소리로’ 창단 작업에 동참했다.
84년 자원봉사 때 만난 중증 장애인이 몇 년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후원자들의 보살핌으로 자신이 귀국한 뒤에도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사랑과 관심이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의 발길을 이곳으로 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예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 자폐증 환자나 엉뚱한 노래를 부르는 정신지체장애인 등 30여명으로 구성된 단원들은 처음엔 어떤 노래도 소화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반복해서 노래를 불러준 뒤 따라하게 한 박씨의 계속된 노력에 자폐증 환자는 마음을 열었고 단원들은 한 곡, 두 곡 외우는 노래가 늘어났다. 지금은 국내외 동요와 민요, 찬송가 등 70여곡을 어느 무대에서나 선보일 수준이 됐다.
박씨는 귀국 초기 ‘줄’을 대지 못해 강단이나 공연단에 발붙이기 어려워 ‘영혼의 소리로’에 전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성악가의 꿈을 접은 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 수준도 어느 정도 올라섰으니 이제 한동안 접었던 제 꿈을 펼쳐나가는 일에도 노력할 겁니다.”
4월 디스크 수술을 받아 지휘를 하지 못하자 단원들이 ‘마음으로만 읽고 들을 수 있는’ 편지와 육성 녹음테이프를 보내 쾌유를 기원했을 때 큰 덩치의 박씨는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별것 아니려니 하면서 우리 공연을 본 사람치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후원자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두 번 혼자 이곳저곳 여행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일 뿐 짬이 나면 홀트복지타운으로 달려오곤 하는 그는 꼭 노래연습을 하지 않아도 장애인들과 부대끼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과 6월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 해외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지난해는 미국에서도 학교와 교회 공연을 통해 감동의 물결을 이뤄냈다. 멋진 무대와 관객의 환호성이 가득한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해도 ‘영혼의 소리로’ 단원들과 생을 같이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귀로만 들으면 거북할 수 있죠. 그러나 마음을 열고 우리 단원이 노력하는 모습과 서로를 이해하려는 목소리를 듣는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 친구들이 좀 더 건강하게, 저와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