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일본프로축구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다가 계약 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방출된 고종수가 최근 국내에서의 연이은 폭행사건에 휘말리며 축구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금호고 재학 시절부터 ‘골목대장’, ‘반항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가졌던 고종수.
지난 95년 고종수는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비쇼베츠가 일주일 동안의 테스트를 통해 그의 잠재된 능력을 알아보고 올림픽팀에 정식으로 발탁.
훈련이 끝나면 보통 후배 선수들이 공을 챙기기 마련이었지만 고종수는 본체만체 하며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 나오기 일수였다. 팀의 막내였던 고종수의 이런 태도를 모두들 못마땅해 했고 결국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히긴 했지만 여전히 독불장군 같은 행동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던 것.
이대로 한국 축구에서 매장 당할 위기에 처한 고종수는 96년 수원 삼성의 김호 감독을 만나 프로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고 이후 타고난 축구 감각을 발휘하며 수원이 프로축구 정상에 서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프로축구 하면 고종수와 특유의 덤블링 세리머니가 떠오를 정도로 그는 한국축구의 간판 스타이기도 했다.
98년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맛봤던 고종수는 2002한일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또 다시 불행이 찾아왔던 것.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재능은 훌륭하지만 게으른 선수”라며 그를 월드컵대표에서 제외시켰고 다시 대표팀 복귀를 노리던 고종수는 경기 도중 무릎 인대를 다치며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야만 했다.
2003년 FA자격을 얻은 고종수는 국내 프로무대를 떠나 유럽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먼저 일본을 선택했다.
그러나 약이 될 줄로만 알았던 일본 무대는 오히려 그에게 독으로 다가왔다.
자신은 미드필더의 역할을 원했지만 교토 구단은 그에게 골을 넣는 포워드 역할을 원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고종수는 마침내 계약기간 중 방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말았던 것.
방출이 아픔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한국으로 돌아온 고종수는 며칠 전 가수 조성모와의 술자리 다툼으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지난 15일 새벽에는 그룹 룰라 출신의 가수 김지현의 측근과의 폭행사건으로 다시 한 번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방출로 인한 아픔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갈등이 있겠지만 프로축구선수로써 나아가 대한민국 성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행위를 했다는 것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번 사건으로 그를 탐내던 친정팀 수원을 비롯해 몇몇 구단의 행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
벌써 세 차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된 고종수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본분을 찾고 재기하여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빛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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