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부동산정보업체가 직장인 839명에게 퇴직금을 어디에 투자할지를 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단연 ‘부동산 투자’. 무려 61.3%였다. 2위(23.5%)가 ‘창업’, 3위(11.4%)는 ‘금융상품’이었고 ‘주식’은 3.8%에 그쳤다.
다들 알고 있다. 퇴직금은 20∼30년 동안의 여생을 지탱해주는 밑천이요, 그렇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무모하게 운용할 돈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조사 결과는 많은 직장인들이 ‘부동산 불패(不敗)’를 철석 같이 믿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과연 그럴까? 불행히도 아니다.
부동산 불패는 사실이 아니라 신화(神話)였다. 기록을 보면 한국의 아파트나 땅 값에는 엄연히 부침이 있었다. 빚내서 부동산 투자 하다가 신세 망친 이가 드물지 않다. ‘불패’ 비슷한 뭔가가 있었다면 바로 ‘강남 아파트 불패’였다.
그렇다면 강남 아파트만 공략하면 될 것 아닌가? 강남 아파트 불패가 계속된다면야 그것도 방법이다. 강남 아파트 불패가 영원할지는 논외로 하고 강남 아파트 투자의 입장료만 따져보자.
강남 아파트에 적용되는 은행 대출의 담보비율(LTV)은 9월 말 현재 50%가량이다. 나머지 50%의 투자자금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강남구에 투자하려면 2억5000만원의 여윳돈이 필요하며 서초구는 2억원, 송파구는 1억원이 입장료다. 여러분의 퇴직금은 얼마쯤 되는가?
아파트는 비쌀수록 값이 떨어질 위험이 더 작다고 한다. 투자금액이 클수록 돈 벌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근(近·지하철역에서 가깝고), 쾌(快·쾌적하고), 대(大·단지 규모가 크고), 신(新·새로 지어졌고), 가(價·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고), 교(校·학교가 가까워야 한다) 등 6가지 잣대에 대한 판단이 이미 가격에 잘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펀더멘털을 알기가 쉽지 않으며 변덕스러운 심리가 크게 작용해 1000만원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주식투자와는 다르다. 저평가된 숨은 진주를 찾기가 애초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사오정’ ‘오륙도’에다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요, 온세상이 ‘강남 강남’ 하니, 정말이지 ‘부동산 투자 권하는 사회’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동산 투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철용 경제부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