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신이 개발을 주도했던 액체연료로켓 KSR-Ⅲ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선 채연석 원장. 채 원장은 “한국도 2005년이면 우주개발국가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김미옥기자
‘10, 9, 8, 7….’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로켓에는 그 나라가 축적해 온 과학기술력뿐 아니라 온 국민의 꿈이 실려 있다. 그것은 1961년 옛 소련이 세계 첫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나 1969년 미국이 달 착륙 유인우주선을 발사했을 때, 또는 2003년 10월 15일 중국이 ‘선저우(神舟) 5호’를 발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중국이 세계 우주항공계의 세 번째 강자로 등장한 ‘선저우 쇼크’는 우리에게 남다른 파장을 남겼다. 특히 채연석(蔡連錫·52)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에겐 그 충격과 감회가 남달랐다.
채 원장은 “예견된 일이었으나 참담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주개발 단계에서 무인우주선 발사는 걷기, 유인우주선 발사는 뛰기에 해당합니다. 중국이 뛰는 단계라면 한국은 기는 단계에도 못 미치죠. 이제 2005년을 목표로 자체 개발한 과학위성의 발사에 매진하는 수준인 걸요.”
‘선저우 쇼크’는 중국의 경제적 군사안보적 부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변국에 경탄과 함께 경계 분위기 등 대단히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엄청난 일입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중국은 우주개발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였는데 앞으로 중국수출품은 모두 ‘싸구려’라는 인식이 확 바뀌겠지요. 이번 발사 성공의 경제적 효과는 수치로 환산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에나 우리나라 우주인을 우리 우주선에 태워 우주로 보낼 수 있을까. 채 원장은 ‘20년 뒤’를 말한다.
“우주개발의 첫걸음은 자국 로켓으로 무인위성을 발사하는 겁니다. 현재 건립 중인 전남 고흥의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2005년 무인위성 발사가 성공하면 세계에서 9번째 우주개발국가가 되지요. 위성 발사체와 로켓 분야도 2015년이면 중국 수준에 근접할 겁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은 1990년 이래 이 분야에서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우리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액체연료로켓 KSR-Ⅲ)의 독자 발사에 성공했고, 지난달엔 처음으로 과학기술위성 1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지금은 100kg급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 KSLV-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채 원장은 이 모든 작업의 중심에 서 왔다.
문제는 돈과 인력. 그는 지금까지도 외줄타기 하듯 예산을 따내고 야금야금 인력을 확보해 왔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중국은 없는 살림에도 유인우주비행을 위해 연간 2조∼3조원씩 쏟아 부었지만 우리는 연간 1500억원에 불과합니다. 종사인력도 중국은 10만, 우리는 수천이나 될까요…. 예산이 적어도 지금의 두 배는 돼야 합니다.”
항공우주 분야는 국력과 직결되므로 선진국에서도 기술 이전을 꺼린다. 스스로 기술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항공우주기술은 곧 국가의 힘입니다. 가령 핵이나 미사일 없는 북한을 상상해 보세요. 국제사회에서 누가 상대나 해줬을까요.”
로켓에 푹 빠졌던 소년 채연석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실감하게 된다.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6남매 중 막내였던 탓에 어려서부터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 그러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게는 그 ‘한 우물’이 로켓이었어요.”
미소간 우주개발경쟁이 한창이던 60년대에 소년시절을 보내며, 신문 잡지에서 로켓 관련 기사만 보면 모두 스크랩했다. 고교 때는 초소형 로켓을 만들려다 폭발사고로 왼쪽 고막을 다치기도 했다. 재수 끝에 들어간 경희대 물리학과 2학년 때 첫 저서 ‘로케트와 우주여행’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로켓에 관한 대중용 저서 8권을 냈다. 대학 4학년 때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화살을 장착한 로켓 ‘신기전(神機箭)’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노력도 했지만 늘 행운이 따라다녔죠. 간절히 어떤 문제를 고민하면 꿈에 그 해결책이 보이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삶은 성공적입니다. 꿈꿨던 대로 살고 나름의 보람도 얻고 있으니까요.”
그는 늘 ‘꿈’을 강조한다. 어린이 대상의 특강에 열심인 것도 이 때문.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21세기의 선도산업이 될 항공우주 분야 진출도 좋은 꿈입니다.”
그의 뜻이 통해서였을까.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그의 장녀는 올해 한 대학의 건축공학과에 진학했고, 지금 고교 3년인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고 선언했다.
“기쁘지요. 제 인생을 평가해 준다는 얘기니까…. 제가 좋아하고 잘했던 것이니 제 자식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채연석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
1951년 출생
1975년 경희대 물리학과 졸
1977년 경희대 기계공학 석사
1987년 미국 미시시피대 항공우주공학 박사
1987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루이스연구소 방문교수
1988년 한국천문우주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과학로켓개발사업단장
1993년 대전엑스포에서 세종대왕 때 만들어졌던 로켓 ‘신기전’ 복원
1993년 과학1호 로켓 개발로 과학기술부 장관 표창
200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선임연구부장
2002년 과학문화재단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 선정
2002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부품소재통합연구단 이사
저서:로케트와 우주여행(1972·범서출판사), 한국초기 화기연구(1981·일지사),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1995·나경문화), 우리 로켓(1995·보림), 우리의 로켓과 화약무기(1998), 로켓이야기(2002·승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