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사관계가 불안정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후진적인 노사단체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이환(丁怡煥) 서울산업대 교수는 노사정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 공동 주최로 28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단체교섭 구조와 사회적 대화’라는 주제의 국제워크숍에서 이같이 ‘쓴 소리’를 했다.
정 교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노동분야 공약을 주도해 만든 인물로 ILO와 함께 지난달 3주 동안 일선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노사관계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우선 사용자측에 직격탄을 날렸다. 1987년 이후 노조는 지속적으로 교섭력을 강화한 반면 사용자들은 정부의 공권력에만 의존해 스스로 힘을 약화시켰다는 것.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연합회 등 경영계 단체들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노사관계 대응역량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총은 근로시간 단축 논의 때 정부안을 수용하겠다는 전경련의 일방적 발표에 반발해 “노사관계에 관한 한 경영계 대표는 경총”이라며 “정부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조나 노동단체의 취약한 지도력도 문제로 지적했다. 노조 내부의 분파주의 때문에 경쟁자들을 의식,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전투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도 지도력이 약한 탓에 정부와 사용자에 대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고 개별 사업장 노조들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노사관계의 대립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진단했다.
ILO 사회적대화국에서 파견돼 노사관계를 진단한 루치오 바카로 선임연구원도 “노조는 근로자 12%를 대표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사용자 단체는 현 노사관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이를 변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경총은 건강한 노사관계 및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충고했다.
패트리샤 오도노번 ILO 사회적대화국장은 한국 노사관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노사갈등을 조율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점을 꼽고 “관료 위주의 노동위원회 위원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상당수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무엇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