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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의 대화]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스와핑

입력 | 2003-10-29 18:30:00


2003년 10월 19일자 미국의 일간지 LA 타임스에는 ‘경쟁적인 한국사회의 남성들, 권력 위해 화장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서양의 화장품 회사들은 언젠가 남성들도 화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분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그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실제 ‘한국의 베컴’이라 불리는 축구선수 안정환을 모델로 엄청난 광고전략을 펼친 한 화장품 회사는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남성용 로션을 80만개나 팔아 거의 50억원의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장기불황의 조짐을 보이는 내수경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남성용 화장품 시장은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단다. 작년에 비해 10%가량 늘어난 규모다.

금년 3월 나는 우리 사회에 여성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려고 ‘여성시대에는 남성도 화장을 한다’는 책을 출간했다. 당시로선 제목이 지나치게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땅의 남성들은 이미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여성시대가 도래하는 속도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를 것이라는 내 예측이 적중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처럼 보인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통과됐다. 올가을 국회만 통과하면 구시대의 대표적인 악습인 호주제가 이 땅에서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마당에 최근 벌어진 두 가지 사회현상이 생물학자인 나를 무척 혼돈스럽게 한다. 바로 큰 젖가슴 선호와 부부스와핑이 그것이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1960년대 우리 라디오에는 ‘한국남’이라는 입담 좋은 산부인과 의사가 있었다. 그분이 언젠가 방송에서 했던 얘기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의 젖가슴은 ‘작은 노랑참외’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여성도 웬만한 서양 여성 못지않은 풍만한 젖가슴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요사이 C컵을 겨냥한 젖가슴 확대 성형수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큰 젖가슴에 열광하기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일본의 잡지 표지모델들은 한결같이 일본 사람들의 표현으로 ‘거유(巨乳)’를 지닌 여인들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 특이하게 돌출형 젖가슴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젖가슴 확대수술을 원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지만, 생물학적으로 볼 때 큰 젖가슴은 남성들에게 자신의 왕성한 번식능력을 광고하는 이차성징에 불과하다. 할리우드를 주물러 온 남성들은 그동안 줄곧 돈으로 여성들의 풍만한 젖가슴을 애무해 온 것이다. 여성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마당에 이 무슨 시대를 역행하는 현상이란 말인가.

스와핑은 언뜻 여성에게 유리한 번식전략처럼 보인다. 다른 동물의 경우라면 보다 나은 유전자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몸으로 자식을 낳은 여성과 달리 남성은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종종 살인까지 저지른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부성 불확실성(paternity uncertainty)’이라 부른다.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남녀의 반응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내가 미국 텍사스대학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버스 교수와 함께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육체적인 외도의 경우에도 여성들은 비교적 관대한 반면 남성들은 훨씬 과격한 반응을 보인다.

스와핑에 참여하는 부부들이 피임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남성 심리의 진화라는 관점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하지만 스와핑을 먼저 시작한 서양의 경우 남자들을 따라 나온 여성들이 진짜 부인이 아닌 경우가 상당하단다. 그렇다면 스와핑은 결국 허위포장된 매춘에 지나지 않으며 남성들은 여전히 잃는 게 없는 셈이다. 나는 우리나라 남편들이 이런 걸 제대로 알기나 하고 서양의 문물을 흉내 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렇다 할 번식 이득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남편을 따라 나서는 여성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