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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2명 체험기]‘지방대 출신’은 평생의 굴레인가

입력 | 2003-10-29 18:30:00


《지방대 출신자에게 대기업의 문은 넘지 못할 높은 벽인가. 본보가 실시한 ‘취업실험’ 결과 실력을 평가하는 면접이나 필기시험이 아니라 서류전형 단계에서부터 지방대 출신자들이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

▽지방대 출신자의 서러움=취업실험에 참가한 유모씨(27). 그는 고교시절 집안이 어려워 재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등록금이 부담돼 사립대가 아닌 국립대를 선택했다.

그가 다닌 학교는 지방대였지만 국립대였고 지명도도 높은 편이어서 열심히 공부하면 기회가 올 줄 알았다. 미8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며 영어실력을 쌓았고 독일어와 일본어 등 제2외국어도 배웠다.

그러나 8곳의 회사에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자 유씨는 낙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실험이 시작된 지 한달 정도 됐을 때 유씨는 “기업체 취업을 포기하겠다”며 지원하기로 했던 회사 두 곳에 원서를 내지 않아 취재팀이 설득하기도 했다.

유씨는 “지금까지 수십군데의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한 곳은 단 두 곳뿐”이라며 “내가 면접관이라도 조건이 같으면 명문대 출신을 뽑겠다”고 말한 뒤 씁쓸히 웃었다. 유씨는 대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내년 5월에 있을 9급 행정직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올 2월 다른 지방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모씨(26)는 실험결과를 듣고 “고교성적이 평생 굴레가 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고교시절 몸이 약해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며 “대학 2학년 때부터 매일 도서관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등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부하는데 입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암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씨도 지난해부터 대기업 10여곳에 원서를 넣었으나 한 곳을 빼고 모두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8곳 중 5곳에 합격한 명문대 출신의 성모씨는 “과거 선배들은 취향에 맞춰 원하는 곳을 골라 갔는데 요즘은 그보다 취업환경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해명=현실이 이런데도 두 지원자가 입사원서를 넣은 8개 기업은 대부분 “학교 차별은 절대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다만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서류에 적는 모든 것이 평가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출신 대학도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른 기업의 인사담당자도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학교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6개 기업은 “실제 회사 서류전형 통과자 중 지방대 출신이 적지 않다”며 출신 대학은 선발 기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전문가 진단 및 대책=전문가들은 이번 취업실험 결과에 대해 한결같이 “대기업의 학교차별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李奎容) 박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잠재능력까지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에 출신 대학 등 외적인 조건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이 출신 대학 외에 실무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교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지방대생의 심리적 압박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연’을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학벌 철폐를 위한 시민모임인 ‘학벌 없는 사회’ 홍훈(洪薰·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대표는 “기업이 ‘명문대 출신을 뽑아야 같은 학교 출신의 공무원 등 주요 인사들로부터 얻어 낼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우선 정부부터 학벌 철폐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력 있는 지방대생을 등용하는 등 학연을 뿌리 뽑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