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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호주제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

입력 | 2003-10-29 18:39:00


호주제 폐지 법안이 논란 끝에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이혼이 급증하면서 호주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안겨 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때늦은 느낌마저 없지 않다. 전통적인 가족형태에 익숙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호주제 폐지는 당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호주제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할 법과 제도로서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

재혼가정 편부모가정 등 새로운 가족형태는 이제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혼율을 강제로 낮출 수 없듯이 이런 가족들이 늘어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가족 형태의 변화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에 맞춰 제도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재혼가정 아이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사회생활에서 고통을 겪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더구나 호주제가 여성차별적인 조항으로 일부에서 위헌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하루빨리 새로운 가족제도를 마련하는 게 순리다. 현행 호주제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호주제 폐지 반대론자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호주제가 사라지면 당장 가족질서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사회적 관습의 힘이 법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지금처럼 아버지 성(姓)을 따르는 것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반대로 호주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가족 해체가 막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정서에서 다소 꺼려지는 것은 ‘아버지 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새 법안이 원칙적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에만 법원의 허가를 얻어 성을 바꿀 수 있게 한 것은 이 같은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호주제 논란은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 호주제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앞으로 논쟁의 초점은 호주제를 대체할 합리적인 가족제도를 모색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