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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참을 수 없는 사랑'…'선수'들의 사랑게임

입력 | 2003-10-30 16:55:00

사진제공 UIP코리아


‘참을 수 없는 사랑’이란 한글 제목은 이 로맨틱 코미디를 평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감이 있다. 오히려 원제인 ‘참을 수 없는 잔인함(Intolerable Cruelty)’이 옳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코엔 형제가 보여주려 했던 ‘사랑’은 속물 남녀가 벌이는 먹고 먹히는 잔인한 게임, 그 속에서 역설적으로 찾게 되는 사랑이니까 말이다.

‘밀로스 크로싱’ ‘바톤 핑크’ ‘파고’ 등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허위의식에 대한 비웃음과 광기를 여기서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돈만 알던 남녀가 진실한 사랑을 깨달아간다는 뻔한 줄거리의 할리우드 스타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성공에 넌더리를 내는 이혼전문 변호사 마일즈 매시(조지 클루니)는 부동산개발로 재벌이 된 사업가 렉스로스의 송사를 맡게 된다. 렉스로스는 외간여자와 모텔에서 벌거벗은 채 기차놀이를 하다가 아내 마릴린(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들켜 이혼소송을 당한 상태. 그러나 마일즈는 마릴린이 위자료를 받기 위해 위장 결혼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에 좌절한 마릴린은 다시 석유부호 하워드 도일(빌리 밥 손튼)과 결혼하고, 마일즈는 이 매력 넘치는 부인에 대해 점점 강렬한 사랑을 느끼면서 두 남녀의 ‘게임’은 시작된다.

뻔한 줄거리와 뻔한 캐릭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연기력이 이 영화의 핵심.

가식 속에 숨어있던 빛나는 사랑의 진실을 깨달은 마일즈가 “사랑은 좋은 겁니다”라면서 판에 박힌 감동적인 연설을 늘어놓을 때조차도 조지 클루니의 눈물은 진짜인 것만 같다. 그의 연기는 따스하고 로맨틱하고 중후하면서도 바람기 넘친다. 거울에 하얀 이를 수시로 비추는 그의 모습은 변호사의 위선을 상징하지만, 이만큼 훌륭한 ‘치아 연기’도 영화사상 전례가 없을 듯하다. 전작 ‘시카고’에 비해 눈에 띄게 살을 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연기는 진실과 가식, 섹시함과 천박함을 자유롭게 오간다. 마일즈와의 키스를 그 여운까지 ‘맛있게’ 음미하는 표정은 그녀가 과거의 농염함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비틀어 인간성에 대한 섬뜩한 냉소를 자아내는 코엔 형제의 장기는 그 정도가 덜해졌지만 여전히 번뜩인다. 부동산개발로 재벌이 된 사업가 렉스로스가 외간여자들과 “칙칙폭폭” 하며 변태적인 기차놀이 섹스에 열광하는 모습은 성공한 사업가들의 ‘저돌성’을 꼬집은 것. 배신감을 느낀 마일즈의 청부로 마릴린을 죽이려는 냉혹한 대머리 킬러는 ‘쌔액 쌔액’ 거리며 천식에 시달리다 ‘코믹하면서도 섬뜩한’ 최후를 맞는다. 코엔 형제는 갑작스러운 클로즈업에 의한 과장된 앵글로 신경증적이고 컬트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마릴린이 ‘이혼하더라도 결혼 전 남편의 재산에 관해 일절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결혼서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재벌 남편들의 마음을 빼앗는 장면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마릴린 역을 맡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실제 3년 전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할 당시 ‘남편이 외도할 경우 500만달러를 추가로 받으며 별거하는 경우에도 매년 150만달러를 받는다’는 냉혹한 단서조항을 내걸어 화제가 됐었다. 그녀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