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은 ‘거시기’를 매개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의사소통의 함정을 희화화했다. 위는 ‘황산벌’에서 백제군(왼쪽)과 신라군(오른쪽)이 사투리의 특성을 십분 살려 벌이는 욕싸움 장면. 아래는 김유신(정진영)과 계백(박중훈).동아일보 자료사진
현재 상영 중인 ‘황산벌’은 코미디의 외피를 썼으나 계백과 백제왕조의 최후를 그린 비장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거시기’라는 백제 말을 둘러싼 오해가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TV프로 ‘개그 콘서트’의 ‘생활사투리’ 코너가 가르쳐 주듯, 이 기묘한 말은 수많은 품사와 의미로 변주되는 성질을 가졌다. ‘황산벌’에서 ‘거시기’가 빌미가 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나는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 갖는 함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황산벌’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초반에 당나라 군사들이 인천 앞바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병사의 말을 옆의 신하가 의자왕에게 전달해 줄 때, 또 계백이 “갑옷 거시기하는 것 잊지 말고…아쌀하게 거시기 해 불자”고 말할 때 백제인들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한 듯이 행동한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 [곁들여 볼 비디오/DVD]'왓 위민 원트' 외
백제인들의 ‘거시기’는, 이미 그들 사이에는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이심전심으로 많은 것이 통해 있음을 역설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언어라기보다 거의 비언어적 소통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백제인들이라고 해서 ‘거시기’를 완전히, 아니 모두가 똑같이 이해했을까? 혹시 한 쪽에서 말한 것을 상대방이 ‘이해했다고 믿는 것’이거나 ‘이해했기를 바라는 것’이거나 나아가 ‘이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라기보다 집단적인 오해에 가까운 것 아닐까?
우리가 흔히 빠지는 의사소통의 함정은, 내가 굳이 자세히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심전심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헤아려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해서 상대가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그런 마음은 종종 신경증의 근원이 된다.
정신과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의 불편함과 요구를 말로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에 참 미숙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다. 겪은 일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훨씬 더 서투르다. 때로는 전후 사정을 생략하고 불편한 증상을 대강 설명한 뒤 그게 왜 그런 거며 어떻게 해야 되냐고 성급하게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전투가 벌어진 뒤, 계백은 진흙으로 엉망이 된 갑옷을 벗게 하고 나서 비로소 처음으로 “거시기해 불자”는 말 대신 “죽어 불자”고 말한다. 동시에 비가 오던 날씨는 환히 개고, 코미디인 양 눙치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호하던 영화도 역사물로서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낸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부분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다. 흔히들 “꼭 말로 해야 아냐”고 하는데, 그렇다. 말로 해야 안다. 누군가 ‘거시기’라고 했을 때, 그것이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던져지면 원래의 ‘거시기’가 아니라 수백 가지의 다른 ‘거시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라인들처럼 수백개의 한자를 조합해 ‘거시기’에 120만여개의 의미가 있다고 계산하는 것이 더 실제의 의사소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두세 가지 의미로 좁혀지기까지는 분명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상대가 알아들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상대가 한번에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며, 그런 기대를 조금 접을 때 관계는 더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 굳이 겉으로 드러나는 글자 그대로의 뜻을 알지 못해도 충분히 속마음이 전달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황산벌’의 욕싸움 장면에서 백제와 신라 군사들은 수많은 종류의 신체적, 언어적인 욕설을 선보인다.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그중 몇 가지는 사운드를 지워버려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데도 행간의 의미는 관객에게도, 양쪽의 군사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된다. 욕설에 있어서만은 양국의 문화적인 교류가 충분히 되어 있었나 싶다.
이렇듯 때로는 말보다 말 아래에 있는 것, 말로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힘이 세다. 그러고 보면 그 힘센 것을 다스려 조금 순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言)과 말(馬)이 모두 좌충우돌 뛰어다니는 액션영화 ‘황산벌’은 그래서 참 ‘거시기’한 영화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hjyoomd@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