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의 수호신전 파르테논은 유네스코(유엔교육문화과학기구)가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록했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재다. 하지만 기원전 438년 완성된 후 역사의 굽이를 지나면서 많이 훼손됐다.
훼손 이유는 다양하다. 파르테논은 시대에 따라 이슬람 신도들의 거처로, 기독교 교회로, 탄약고 등으로 쓰였다.
395년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내렸을 때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1456년 오스만튀르크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는 이슬람교의 성상 파괴주의자들이 손상을 입혔다. 1687년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튀르크가 베네치아와 전쟁을 벌일 때는 탄약고로 쓰였다. 베네치아군은 신전 동쪽을 포격해 지붕과 내부 공간, 기둥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복원 중인 파르테논을 가장 덜 파손된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손상된 부분을 메울 새 대리석과 원래의 대리석 조각이 흩어져 있다. 복원은 이들에게 ‘새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아테네=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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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그리스가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일 때도 크게 부서졌다. 지진도 여러 번 있었다. 1981년 지진 때는 서쪽 모서리가 크게 부서졌다.
마놀리스 코레스 파르테논 복원 프로젝트 위원장은 “최근 25년 동안에는 대기오염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며 “대리석이 산성비에 젖으면서 내부까지 녹아 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복원작업은 1983년 시작돼 21년째 진행 중이다. 파르테논이 고대 아크로폴리스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 기념물 보존위원회(CCAM)가 파르테논을 비롯한 일대의 고대 건축물 복원을 총괄한다.
10월 초 파르테논을 찾았을 때 철제 비계가 신전 내에 촘촘하게 세워져 있고, 도면대로 대리석을 잘라내는 팬터그래프, 리프트, 금속 절단기, 레일 등이 널려 있었다. 신전 북쪽에는 거대한 흰색 크레인도 보였다.
우선 신전에 있던 300t 무게의 각종 대리석이 보존과 재배치를 위해 신전 밖으로 옮겨졌다. 원래 파르테논 건설에는 1만3400개의 대리석이 쓰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신전 주변에 5만여개의 부서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복원팀은 떼어낸 대리석 위에 일련번호를 써넣고 원래 위치를 꼼꼼히 기록했다. 그러나 오래전에 훼손된 부분은 원래 돌을 찾을 수 없어 새로운 대리석을 깎아 배치하고 있다.
현장감독인 카시 파라시는 “흩어진 돌 조각에 숨겨진 질서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철저한 도상작업을 먼저 한다”고 말했다. “1942∼44년에도 일부 복원을 했는데 300여개의 대리석 조각이 잘못 ‘조립’돼 이번에 모두 재배치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과거에 시멘트로 복구된 부분도 모두 파내고 다시 대리석으로 배치했다. 또 전에는 대리석을 연결하는 데 쇠못을 만들어 썼지만 요즘은 티타늄을 사용한다. 쇠못은 녹이 슬고 부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 파라시씨는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쇠못을 썼지만 용해시킨 납 합금을 겉에 발라서, 녹은 물론 지진의 충격도 흡수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복구작업은 ‘복원을 위한 베네치아 헌장’에 따라 이뤄진다. 헌장에 따르면 새 재료는 이전의 재료와 조화를 이뤄야 하며, 새 재료임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복원했다는 사실이 감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래에 새로운 복구 재료와 도구가 나올 수 있고 앞선 복구가 잘못됐을 경우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부의 라자로스 콜로나스 국장은 “복원을 하면서 고대 그리스인의 건축술에 새삼 감탄했다”며 “대리석 접합부에 회반죽을 일절 쓰지 않은 채 물리적인 결합만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대리석 사이의 간격이 100분의 1mm도 안될 정도로 밀착돼 물이 스며들지 못할 정도라는 것. 그는 “이 때문에 대리석 내부에 끼워 넣은 나무 핀이 2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썩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다”며 “이런 기술은 디지털시대에도 재현하기 힘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도구를 사용해 파르테논을 세웠다. 정으로 대리석을 깎고, 거기에 구멍을 파서 쇠갈고리나 쇠집게를 끼워서 대형 도르래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현대의 복구팀은 훨씬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대신 훨씬 어려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 원래 대리석의 부서진 부분을 보완하면서 경계면에 맞춰 새 대리석을 오리듯이 잘라내고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복원작업을 끝내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크게 파손된 파르테논 동쪽 지붕과 기둥, 내실(內室)은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복원팀은 인력충원을 요구하며 9월 말부터 아크로폴리스의 문을 닫은 채 파업을 벌이다 최근 작업을 재개했다.
그리스 정부는 내년 8월 아테네 올림픽 전까지는 복원공사를 어느 정도 일단락 짓고 싶어한다. 파손된 채 남아 있는 파르테논은 복원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그리스인의 자부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
아테네=권기태기자 kkt@donga.com
▼파르테논은…▼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의 딸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로마 신화의 미네르바)를 모신 신전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수호신으로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테나 가운데 어느 신을 선택할지 경합을 벌였으며 결국 그들에게 올리브 나무를 선사한 아테나를 택했다.
파르테논은 ‘처녀의 신전’이라는 뜻이며 아테네 시내 언덕 위의 ‘아크로폴리스’ 내에 있다. 언덕 아래에는 제우스 신전의 일부가 남아 있다.
현재의 파르테논은 페르시아인이 기원전 479년에 파괴한 것을 기원전 447년에 다시 착공, 기원전 438년에 완성한 것이다. 설계는 익티노스, 조각은 페이디아스, 공사는 칼리크라테스라는 당대의 거장들이 맡았다.
기단은 동서 70m, 남북 31m 규모이며 동서 17개(×2), 남북 8개(×2)의 기둥들은 웅장한 도리스식 건축의 극치를 보여준다. 실제보다 더 웅장하고 균형 잡혀 보이게 만든 건축술이 돋보인다. 내부에는 전실 본전 후실이 있었다. 본전에는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12m 높이의 아테나 상이 있었으나 파괴돼 사라졌다. 외벽에도 갖가지 조각과 부조가 있었으나 상당 부분이 뜯겨져 나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원 완료된 파르테논의 모습을 담은 디지털 가상도(왼쪽)와 철제 비계가 들어서기 전의 파르테논 동쪽 내부공간. -동아일보 자료사진
▼메르쿠리재단 “영국이 가져간 신전內 조각 꼭 반환돼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북쪽 아래에는 멜리나 메르쿠리 재단이 있다. 세계적인 여배우이면서 그리스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멜리나 메르쿠리(1925∼1994)의 이름을 딴 재단이다. 그는 생전에 영국에 빼앗긴 파르테논의 조각을 돌려받기 위해 애썼다. 이 재단 총재 보좌역인 폴린 제이라니(사진)를 만나 반환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영국은 어떤 것들을 가져갔나.
“1805년 오스만튀르크 치하의 그리스에 영국인 엘진경이 대사로 부임해 왔다. 그는 파르테논의 조각과 부조들을 상당수 뜯어갔으며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를 ‘엘진 마블스(Marbles)’라고 한다.”
―메르쿠리는 왜 반환운동에 나섰나.
“그리스 문화를 깊이 사랑했다. 81년 장관이 된 뒤 유네스코와 함께 일하면서 반환운동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운동은 어떻게 펼치고 있나.
“그리스뿐 아니라 미국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키프로스 등에 반환을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있다. 이들이 영국 문화계 인사들에게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소송은 하지 않는다. 일단 내년 아테네올림픽 기간에 아테네에서 전시할 수 있게끔 요청하고 있다. 에반겔로스 베니젤로 문화부 장관도 대영박물관에 직접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영박물관이 거부하고 있다.” 제이라니는 메르쿠리가 장관이던 89년 문화부에서 같이 일하다 94년 메르쿠리가 숨지고 재단이 생기자 이곳으로 옮겨와 일하고 있다.아테네=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