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 800고지에 사는 전문희씨(41·사진)의 밥상에는 요즘 가을 냉이와 쑥국이 오른다. 입가심으로는 쑥차도 좋지만 피곤을 씻어내는 데는 칡꽃차가 그만이다.
“쑥, 냉이 하면 사람들은 봄만 떠올리죠. 그러나 요즘도 산과 들 곳곳에서 연한 순이 돋는 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암에 걸린 노모의 병구완을 위해 서울의 인테리어 사업을 접고 지리산에 파묻힌 지 10년. 어릴 적 한약방을 하던 외삼촌에게 엉겅퀴, 맥문동 등을 뜯어다 주었던 기억을 되살려 어머니의 통증을 다스릴 풀을 뽑으러 다닌 게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제 그는 산자락에서 나는 온갖 풀과 꽃으로 차 재료를 만들고, ‘건강을 위한 산야초 모임’이란 동아리를 이끄는 ‘자연중독자’가 됐다.
산야초란 산과 들에서 나는 온갖 풀, 꽃을 이르는 말. 전씨가 그간의 경험을 정리해 쓴 책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화남)에 실린 차와 먹을거리의 목록을 보면 ‘이런 풀도 다 먹고 마실 수 있나’ 새삼 눈 비비고 보게 된다. 봄에는 백초차 민들레차 토끼풀 찔레꽃, 여름에는 뽕잎차 칡꽃차 연잎차 질경이 꿀풀, 가을이면 구절초차….
커피를 대체할 전통차로 녹차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몸에 좋다면 씨를 말리는’ 사람들의 욕심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산야초차에 입문하는 첫 단계가 바로 채집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는 겁니다. 산야초에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어서 뿌리까지 뽑지만 않으면 씨가 마르는 일은 없어요. 작은 것들은 캐지 않아야 하고, 꼭 뿌리를 캐야 한다면 포기나누기 식으로 하고…. 자연을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것만이 자연을 위하는 길은 아니라고 봐요. 자연이 주는 걸 잘 나누는 것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 공생하는 방법이겠죠.”
그래도 그가 자연과의 일체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은 산야초차를 마실 때보다는 채집을 위해 산에 오를 때다.
“낙엽 진 지리산에 요즘은 보라색 용담, 가녀린 물매화가 한창이지요. 꽃하고 놀다 보면 풀물 든 제 손 위에 가을 나비가 겁내지 않고 앉았다 가고, 잠자리도 와서 쉬었다 가고…”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