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어린이 책]“아이들의 상상력이 내얘기 살찌워요”

입력 | 2003-11-04 16:37:00

첫 청소년 소설 3부작을 쓴 이사벨 아옌데. 아옌데는 1부 ‘야수의 도시’는 환경을, 2부 ‘황금용 왕국’은 정신세계를, 3부 ‘소인의 숲’은 평화를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소살리토(미 캘리포니아)=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샌프란시스코 북쪽 금문교를 지나자마자 왼편 태평양을 멀리하고 오른편 샌프란시스코 만쪽으로 돌면 조용한 항구도시 소살리토가 나온다. 휴양지 같은 이곳에 이사벨 아옌데(61)가 살고 있다.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대통령의 5촌 조카딸인 그녀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몰려 베네수엘라로 망명하기도 했다. 그녀가 망명지에서 외할아버지가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써 내려간 것이 첫 소설 ‘영혼의 집’이다. 비극적인 칠레의 역사를 4대에 걸친 한 가계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녹여낸 이 소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녀를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중남미 대표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0권의 장편을 낸 그녀는 최근 국내 출간된 청소년 소설 ‘야수의 도시’(본보 1일자 북섹션 ‘책의 향기’ 6면 참조)를 펴내 다시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의 국내출판사인 비룡소는 3부작 중 2, 3부 격인 ‘황금용 왕국’과 ‘소인의 숲’(가제)을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긴 기자에게 전화로 ‘길이나 잘 찾아오라’고 걱정해주던 비서 줄리아 웰치가 아담한 2층집 안내데스크에서 일어나 반긴다. 1층 방엔 ‘영혼의 집’의 영화포스터가 붙어 있고 각국에서 발간된 아옌데의 소설들이 꽂힌 책장이 있다. 자그마한 여인이 들어와 손을 내미는데 예순을 넘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반짝거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청소년 소설 ‘야수의 도시’를 썼는데….

“나는 스페인어로 글을 쓴다.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까지 스페인어로 나왔고 세번째 이야기는 내년에 스페인어로 나올 예정이며 그 뒤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다.”

―‘야수의 도시’에서 아마존 밀림의 묘사가 아주 생생했다.

“아마존을 두 번 여행했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2부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했고 3부는 아프리카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인데 두 곳 모두 여행한 적이 있다. ‘야수의 도시’에 나온 15세 소년 알렉스와 12세 소녀 나디아가 한살씩 더 먹으며 함께 탐험을 계속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이 실제 당신 손자손녀의 이름이고 할머니의 직업 역시 작가로 당신과 같다. 책 속의 할머니와 얼마나 닮았나.

“내 손자손녀인 알렉스가 13세, 안드레아 11세, 니콜이 10세로 맞다. 그러나 책 속의 할머니가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알렉스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내색하지 않는 데 비해 나는 계속 뽀뽀하고 애정을 표현하며 아이들을 망치고 (spoiling) 있다.”

―손자손녀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썼다는데….

“밤에 잠자리에서 아들 딸뿐 아니라 손자손녀들에게도 얘기를 많이 들려준다. 아이들은 희한한 상상력으로 내 얘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또 독서클럽을 지도했는데 생각이 깊고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메시지가 무엇인가.

“주제는 있어도 메시지는 있을 수 없다. 아이들은 영리해 상상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세 번째 얘기를 쓸 때 이라크전쟁이 일어나 평화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이같이 현실상황은 주제를 정하는 데 역할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손자손녀에게 하는 독서지도는….

“난 어려서 마크 트웨인, 버나드 쇼, 알렉상드르 뒤마, 톨스토이의 책을 많이 읽었다. 다섯 살부터 책을 읽었는데 TV도 없고 게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에게 옛날 책을 읽으라고 하면 싫어한다. 그래서 손자손녀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주되 읽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일단 읽으면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 애가 왜 밀림에 갔을까?’하고 묻고 아이들은 십중팔구 ‘모르겠어’라고 답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 알아야 한다’며 다시 대화를 유도한다.”

―청소년 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당분간은 아니다. 아이들 소설은 문장도 간단하고 움직임도 많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해해야 하고…성인용은 나의 느낌 그대로 묘사하면 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 손자손녀들도 점점 크고 있어 독자층을 더 낮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3부에서 알렉스의 엄마는 암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는가?

“알 수 없다. 인생은 과정이지 결말이 아니다. 그래서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낼 수 없다. 현실에서 암이 완치되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공평하지 않다. 또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 아닌가?”

―당신 인생에 소설쓰기와 가족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대답할 수 없다. 하나를 꼽으라면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겠으나 일과 가족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1982년 데뷔 이후 작품들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인 소설가가 된 아옌데에게 다시 큰 시련이 닥친다. 큰딸 파울라가 의식불명에 빠져 병상을 지키는 아옌데와 사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고 이듬해 숨을 거둔 것. 그녀는 병상에서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자전적 소설 ‘파울라’를 94년 발표한다.

“가난한 이웃에게 헌신적이고 똑똑한 아이였어요. 그 얘가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소설 ‘파울라’의 인세로 ‘이사벨 아옌데 파운데이션’이란 재단을 만들었어요. 전세계 빈민지역 어린이와 여성의 교육 보건 보호사업을 돕고 있습니다. 사위 역시 딸에게 무척 헌신적이었어요. 아직까지 사위와 친하게 지냅니다.”

마침 비서 줄리아가 ‘인터뷰시간이 10분 남았다’고 상기시켜 주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아옌데는 “사위의 아내”라며 다시 줄리아를 소개했다.

소살리토(미 캘리포니아주)=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