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유치원 원장이 협박편지를 신고하면서 경찰서에서 겪었던 일은 시민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원장이 유치원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편지를 들고 민원실을 찾아갔더니 담당 경찰관은 ‘읽을 가치가 없으니 가져가서 찢어 버리라’며 편지를 집어던졌다는 것이다. 원장이 강하게 항의하자 민원실은 그때서야 사건을 여성청소년계로 넘겼고 여성청소년계는 담당이 아니라며 다시 형사계로 넘겼다고 한다.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신고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이나 됐다. 형사계도 ‘당장 수사를 시작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 알라’고 말하다가 강남지역 학교에 협박편지가 잇따르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본 뒤 이틀이 지나서야 편지의 지문감식을 의뢰했다고 한다. ‘국민이 필요로 하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경찰 서비스 헌장의 정신은 이 경찰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반면에 경찰청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사범 검거에 특진과 포상금을 내걸자 경찰관들이 검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협박편지 사례와 뚜렷이 대조되면서 경찰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선거사범 단속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민생치안’과 ‘선거사범 검거’ 가운데 어느 쪽에 경찰업무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겠는가. 당연히 ‘민생치안’이다.
경찰청의 역점시책에도 생활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첫 번째에 올라 있고 최근 민생치안을 내세우며 경찰혁신위원회까지 조직됐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민원인을 귀찮게 여기는 경찰 내부의 그릇된 분위기가 별로 변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경찰서를 찾았던 민원인 가운데 불쾌감을 안고 돌아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러니 범죄 피해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특히 경찰 수뇌부는 앞으로 선거사범 단속에 신경 쓰느라 민생치안이 소홀해지는 일이 없도록 별도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