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코는 입에 손을 댄 채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우철씨, 맞지예?”
“어.”
“나를 어디서 만났나?” 우철은 눈에 들어간 머리칼을 떨어내고 충혈된 눈을 깜박거렸다.
“저도 밀양사람입니다. 이우철씨하고 동생인 우근씨가 달리는 것을 늘…아이고, 정말 이우철씨 맞네예…이런 데서 이렇게 만나다니…아이고.”
나미코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한 부분이 노랫소리와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메아메 후레후레 가아상가 자노메데 오무카이 우레시이나…고무줄놀이를 했었다…고무줄이 무릎 높이가 되면 속바지 고무줄에 치마 자락을 집어넣고…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단발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종남산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짧게 깎은 머리에 하얀 셔츠를 입은 우근씨와, 빨간 러닝셔츠를 입은 우철씨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큐큐 파파.
“괜찮나?”
“괜찮습니다…가슴이 메어서….”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축축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입을 벌리고 호흡을 하고,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밀양에서의 나날을 떠올리면 낙원에서의 나날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괴롭다. 새카만 어둠은 견딜 수 있지만, 그 나날들을 생각하면 반짝반짝 빛이 새들어 어둠이 밝혀진다…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까지 다 보인다…아이고 내 속이야….
“몇 살이고?” 우철이 물었다.
“열여섯입니다.”
“우리 딸하고 똑같네…만주 땅에는 혼자서?”
“…우한입니다.”
“그라믄 우한에는 언제?”
“2년 전 8월에요.”
“2년 전이라카믄, 열네 살 때?”
“예…열네 살이었습니다.”
“열네 살 나이에 혼자…여자 정신대?”
“아닙니다…속았어예.”
나미코는 저고리 소매로 눈물을 닦고, 우철의 옆에 서서 싸늘한 철 난간을 잡았다. 난간이 젖어 있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