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다고 하자. 한 명 들어가 살 집이나 열 명 들어가 살 집이나 짓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빨리 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혼자 살 집이라고 해서 바닥도 제대로 고르지 않은 채 대충 기둥 세우고 천막 하나 얹는다고 하면 그 집이 얼마나 가겠으며, 거기에 들어가 살 사람의 건강은 어떻게 되겠는가.
현대아산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북한 개성공단 1단계 사업부지 외곽에 독자적으로 1만평 정도의 시범공단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다.
주지하듯이 개성공단은 한국토지공사와 현대아산이 2007년 입주를 목표로 3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공단 조성과 관련한 4개의 하위 규정이 이미 공포되는 등 사업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100만평 규모의 공단이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조그마한 공단이라니. 더욱이 현대아산은 개성공단의 사업자이기도 하지 않은가. 굳이 별도 공단을 만들려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입주가 급해서라지만 1만평이라도 전깃줄은 들어가야 하고, 수돗물이 나와야 하며, 도로도 놓여야 한다. 1명이 가든, 1000명이 가든 신변보장이 필요하고 통행 합의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기반시설과 제도적 장치들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시범공단이란 이름 아래 입주부터 추진하겠다는 것은 현대아산, 중기협, 그리고 북한 당국이 조기 성과에 집착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
또 시범공단에는 5개 정도의 시범공장을 입주시킬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의 시범공단이 우리 경제에, 그리고 남북경협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시범공단이 추진될 경우 제대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개성공단 등지에 진출할 의사를 갖고 있던 다른 기업들은 그만큼 주춤거리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은 두 개의 사업을 놓고 남한 사업자들끼리 경쟁시킬 것이므로, 우리 스스로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협상 결과를 낳을 우려도 있다. 과거 해외 건설시장 진출 과정에서 우리 기업간에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굳이 우리끼리 추진력을 분산시키고 협상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굳이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의욕만 앞선 조급함의 결과인 금강산관광사업이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지 우리 모두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 남북경협은 빨리 하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것이 중요하고, 성공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대북사업에서도 돈을 벌 수가 있구나’ 하고 대북 진출 의사를 갖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고, ‘남한과의 경협은 이런 식으로 해야 지속되고 확대될 수 있구나’ 하고 북측도 학습하게 되면서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남북경협의 발전과 이를 통한 남북경제 모두의 성장,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손 대대로 들어가 잘살 집을 지어야지, 당장 급하다고 움막을 지을 일은 아니다.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