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지방자치단체가 학교급식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 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 급식에 대한 시도의 재정지원이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여름철도 아니건만 학교에서 급식을 받은 학생들이 툭하면 식중독을 일으키고 줄줄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안전하지 못한 학교 급식’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다. 보다 못한 학부모와 지자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결과가 바로 급식조례 제정이다. 현재 각 지자체가 추진 중인 급식조례의 핵심적인 내용은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학교급식에 우수농산물이 사용될 수 있도록 소요 비용의 일부를 지자체 재정의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급식조례는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학부모 등 지역주민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국회가 학교급식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나태한 국회’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이를 계기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학교급식에 우수농산물을 사용하자는 것은 피폐일로에 있는 우리 농촌을 살리자는 뜻도 있다. 따라서 학교급식조례에는 학교 지역사회 농촌이 모두 ‘윈-윈’ 하는 전략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법리논쟁으로 급식조례 제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현행 지방자치법제는 일반자치와 교육자치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교육자치를 규율하는 학교급식법에 식품비 지원의 근거 규정이 없는 만큼 이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급식조례는 위법이라는 것이 행정자치부의 견해다. 학교 급식도 교육사무의 일환이므로 교육과 무관한 시도지사가 그들의 밥값을 지원할 수 없다는 논리이나 이는 너무도 비교육적이고 편협한 법해석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통상마찰을 의식하는 외교통상부는 급식조례가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급식조례는 이를 의식해 ‘우리농산물’ 대신 ‘우수농산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최근 국무조정실도 급식 재료를 정부가 구매해 조달할 경우 WTO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학교급식법의 개정과 관계없이 대법원의 판례는 상위법령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 아닌 한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조례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급식비 지원과 같이 주민에게 유리한 조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로 대법원은 1997년 판결에서 지자체 예산 범위 안에서 생활이 곤궁한 주민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도록 한 조례와 관련해 이 조례가 상위 법령에서 정한 것 이상의 지원을 해주는 내용이라 해도 이는 지역실정에 맞는 자치행정이라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 한 끼는 학생들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즐거움이다. 그들이 정부 부처간 법리 논쟁에 밀려 질 낮은 음식을 먹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
김성수 연세대 교수·공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