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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실][문학예술]'잃어버린 겨울방학'

입력 | 2003-11-07 17:27:00


◇잃어버린 겨울방학/이소완 글 양상용 그림/152쪽 8000원 소년한길

도서반 아이들과 올해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각자 ‘내가 권하는 5권의 책’을 가져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골라온 책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학원과 게임, 버디버디와 휴대전화 문자가 아이들을 ‘접수’한 시대에 도서반원들이 골라온 책이 청소년들의 책읽기를 대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목록에서 겹치는 이름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요시모토 바나나, 파울로 코엘료 -을 보면서 청소년 시절 특히 중학생들의 책읽기가 어른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동화책을 읽을 나이도 아니고, 어른들의 책을 넘겨다볼 나이도 아닌 어중간한 연령대가 바로 중학생들이다. 바나나의 책이 몽환적이라며 그 문체를 닮고 싶어하는 아이부터,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더듬거리며 읽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알게 된 책들이나 판타지, 혹은 만화가 들어간 가벼운 책들을 읽고 있다. 아니면 안 읽거나. 나는 성장의 터널을 지나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문제와 바로 만났으면 한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 ‘잃어버린 겨울방학’을 읽고 우리 아이들이 느닷없이 닥쳐온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더 이상 동화적이지 않은 가정의 모습 혹은 친구에게 마음 열기의 어려움 같은 소소하지만 자신들을 짓누르는 문제들과 만나서 담담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라든가 조금씩 화해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잃어버린 겨울방학’은 심리묘사가 잘 된 3편의 단편이 묶인 소년소설이다. 표제작 ‘잃어버린 겨울방학’에는 엄마 아빠의 불화로 흔들리는 가정에서 마음의 허기를 달래지 못해 아파하는 열세 살 영수가 있다. 아빠와 싸우고 외갓집으로 내려간 엄마를 찾아서 먼 길을 떠난 영수가 혼자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퉁퉁 부은 눈을 감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 위를 창가로 들어온 햇살이 비출 뿐, 문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성장의 터널에서 감당해야하는 가정의 문제를 잘 그려낸 이 단편은 아이들에게 담담한 슬픔을 준다.

‘만우절 연극’에서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경태에게 다가가는 내가 주인공이다. 분실사건이 생겼을 때 책상 위로 올라가서 책가방 검사를 받아야했던 불쾌한 경험들, 말도 안 되는 구실로 학생을 옭아맸던 제도와 언어들, 가정환경으로 그 아이를 지레 판단해버리는 경솔함 등으로 묘사된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상처와 치유를 주고받으며 자란다. 상처를 받아 웅크리고 있던 경태가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기를 바라는 대목에선 가슴이 뭉클했다. 친구가 되는 방법에 서툴러 쉽게 판단하고 무리 짓고 고개 돌려버리는 우리 아이들이 읽기를 바란다.

‘할머니의 모자’는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두렵고 무서웠던 아이가 할머니의 유품인 모자를 간직하면서 고인을 돌아보는 추억과 그리움에 대한 맑고 정갈한 글이다. 마음의 무늬를 따라가며 읽었던 이 책을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려고 한다.

서미선 구룡중 국어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