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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니]조완제/일본 대구탕엔 대구가 없다

입력 | 2003-11-07 18:12:00


일본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에 들르면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차림표에 ‘대구탕’이라고 쓰인 음식을 주문하면 육개장 비슷한 매운 찌개가 나오는데, 대구 토막은 찾으려도 찾을 수 없다. 물론 일본에도 대구는 있지만 주인에게 물어보면 그게 대구탕이니 그리 알고 먹으라는 식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조차 육개장이 대구탕으로 둔갑해 버린다.

일본에서 젓갈은 ‘창자’라는 살벌한 이름으로 메뉴에 적힌다. 어떤 연유로 젓갈이 창자가 돼 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품위와 감칠맛의 발효식품 젓갈이 일본 땅에서 피 냄새가 풍기는 창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창자는 뭇짐승의 그것일 수는 있어도, 생선 속을 발효시킨 젓갈의 보통명사로 하기엔 어딘지 어색하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이라면 “창자 주세요!”라고 주문하면서 ‘멋없고 썰렁한’ 한국인의 언어감각에 실망할 터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은 서울 번화가의 각종 안내간판이나 식당 차림표의 일본어 표기에 우선 기뻐한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 그 일본어 표기의 오류에 또 한 번 놀란다. 분식점에 적힌 라면의 일본어 표기는 한국을 왕래하는 일본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라면의 일본어는 ‘라멘(ラ―メン)’이지만 이를 ‘라메소(ラ―メソ)’로 적은 가게를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가타카나의 ‘ン’과 ‘ソ’의 구별이 한국인에겐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그림이 아닌 엄연한 문자인 다음에야 일본인에게 이를 수긍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전에 NHK에서 방송된 한국드라마 ‘겨울연가’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대가 된 강원 춘천시를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이 나올 정도였다. 월드컵 이후 반짝 특수를 염려하던 한일관계는 특히 한국어교육, 음식, 영화, 드라마, 가요 분야를 중심으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NHK가 발행하는 한국어 교육방송 교재의 월간 출판부수가 지난해까지 16만부(라디오와 합산)에서 올해 18만부로 늘어난 것은 일본인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성장과 달리 실생활에서 한일 이해의 갭은 메워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어교육 분야만 하더라도 우수한 교사의 부족이나 민간 교육시설의 체계화되지 못한 운영방식은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음식과 관련해서도 아직 갈비와 김치를 넘어서지 못해 다양성 결여를 느끼게 된다. 예능 분야 역시 흥행 위주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탓에 정작 제대로 된 한국문화는 무엇이 소개되는지 걱정스럽다.

동시에 이는 한국 내의 일본 이해와도 맞물려 있다. 라멘을 라메소로 틀리게 표기하는 한국에, 실은 약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일본어 학습자가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민망해진다.

문화는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쌍방 교환이 가장 이상적이라 한다. 주유소에서 ‘만땅’을 ‘가득’이라 고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라메소’를 ‘라멘’으로 제대로 고쳐 적도록 식당주인에게 권해 보자. 그런 노력이 있어야 머잖아 일본의 대구탕에서도 대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완제 도쿄 한국어교육연수센터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