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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462…잃어버린 계절(18)

입력 | 2003-11-07 18:43:00


“난…난…후쿠오카에 있는 군복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어예. 다음날, 삼랑진역에서 8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집에 왔지예. 엄마하고 오빠한테 얘기하면, 시집도 안 간 딸자식을 외지에 내보낼 수 없다고 막을 게 뻔하고, 양아버지한테는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말할 수 없어서,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빈손으로 집을 나왔습니더. 밀양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는 6시 전하고 8시 지나서, 그렇게 두 번밖에 없으니까, 삼랑진까지 걸었어예. 하얀 블라우스에 멜빵 치마를 입고, 고무신 코가 찢어져 짚으로 묶고 나섰는데, 그런데도 펄럭펄럭, 몇 번이나 멈춰 모래하고 돌멩이를 꺼낸 기억이 나네예.

아주 맑은 아침이었어예. 좋은 일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지예. 그야 불안하기도 했지만, 불행에서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걸었습니더. 탁 탁 탁 탁,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예. 나는 오빠가 쫓아온 줄 알고 걸음을 재촉했지예. 탁 탁 탁 탁, 누구였겠습니꺼? 아저씨 동생, 우근씨였어예. 나는, “앗!”하고 소리를 질렀지예. 우근씨는 “안녕!” 하고 웃으면서 말을 걸어 주었어예. 그리고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면서 내 얼굴을 보는 깁니더. 나도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지예. 머리칼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기라예.

“와, 덥네” “덥네예” “어디 가는데?” “삼랑진역에예” “기차 타는가베?” “예” “혼자서?” “예” “오늘도 엄청시리 덥겠다” “예, 그렇겠네예” “잘 가라!” “안녕히 가시소!” 그뿐이었어예. 겨우 말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얼마나 빛이 나던지…눈이 부셔서…눈이 짓뭉개질 정도로 반짝반짝 하고…그 후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도 비참해서….”

나미코는 담배를 피우듯 숨을 들이쉬고는 잠시 숨을 멈추고 캄캄한 바다를 쳐다보았다.

“삼랑진역에서 대륙을 타고 가는 도중에, 방향이 반대라는 것을 알았어예, 부산이 아니고 다롄에서 배를 타게 되었다는 남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지예. 다롄항에서 탄 배 안에서, 하카다에 있는 공장은 정원이 꽉 차서, 상하이항에서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우한에 있는 군화공장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보통은 그쯤에서 이상하다 여기는 법인데…그런데도 나는…돈을 모아서 여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다, 3년만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항의도 불평도 한마디 안 했어예…참말로 그런 바보가 없지예…그런 바보가 없어예…어디로, 뭣 때문에 데리고 가는지는 낙원에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더.”

글 유미리